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100평 규모의 24시 곰탕집에는 평일 100명이 넘는 외국인 손님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아니라 그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하루 평균 방문 손님이 500명 정도인 이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의 20%가량은 외국인인 셈이다.
이 식당을 부모님과 함께 운영하는 이기훈(27)씨는 “몽골인, 조선족 동포, 우즈베키스탄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가릴 것 없이 찾아온다”며 “한 중국인 단골은 1주일에 3일은 저녁마다 와서 수육에 소주를 시켜먹는데, 그 손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소비 파워로 떠오르고 있다. 본지는 BC카드 신금융연구소와 함께 국내에서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BC카드를 발급받은 외국인의 최근 3년(2020년~2023년)간 카드 사용 내역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외국인의 카드 결제 금액은 매년 평균 17.03%씩 증가해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카드 결제 금액 증가율(연 평균 4.65%)의 3.7배에 달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7584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에 육박한다. 이들이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의식주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내수 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체 카드 결제 금액에서 외국인의 비율은 2023년 기준 2.85%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외국인 등록증 보유자(134만8626명)의 국내 인구에서 비율(2.6%)보다는 높다. 외국인 1인당 카드 사용액이 내국인보다 높다는 뜻이다.
시·군·구별로는 카드 매출 중 외국인 비율이 10%를 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경기 시흥시가 유일했다. 하지만 2022년에는 경기 시흥시(12.65%)와 서울 금천구(10.39%) 두 곳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전남 영암군(13.53%), 경기 시흥시(13.51%), 경기 안산시(12.36%), 충남 아산시(10.85%), 서울 금천구(10.74%) 등 5곳이 됐다.
외국인의 소비 파워는 지방에서 두드러진다. 3년간 외국인 연 평균 카드 결제 금액 증가율이 높은 곳은 대전광역시(23.89%), 대구광역시(22.40%), 전라남도(22.33%), 제주특별자치도(20.76%), 충청북도(20.59%) 등의 순이었다. 서울(10.96%)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외국인의 소비는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전·대구·전남 등 외국인 소비가 급증한 상위 3곳을 분석했더니 세 곳 모두 결제 금액 비율 1위 업종은 마트,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 등 유통업이 차지했다. 하지만 전남에선 자녀나 본인 교육과 관련 있는 학원이 결제 금액 5위 업종에 올랐고, 대구와 대전에선 의료기관 이용액이 각각 3·4위였다.
국내 거주 외국인 중 ‘큰손’은 누구일까. 외국인 카드 사용액을 연령·성별로 분석해보니 30대 남성이 19.32%로 가장 컸다. 이어 30대 여성(14.98%), 40대 남성(14.09%), 50대 남성(10.59%), 40대 여성(10.15%) 순이었다. 20대 이하 남성과 여성은 각각 6% 정도 수준이었다.
외국인의 국내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소득 증가와 관련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월 300만원 이상을 버는 외국인 임금 근로자는 2022년 23만9000명에서 지난해 31만3000명으로 31% 늘었다. 이들이 전체 외국인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30.1%에서 35.8%로 증가했다. 지난해 외국인 취업자 수는 92만3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