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가 증시 폭락으로 분노한 중국인들의 ‘통곡의 벽’이 됐다’

중국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최근 증시 폭락에 대한 불만을 미 대사관 웨이보 계정에 표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5일 보도했다. 지난 2일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이 올린 야생 기린 보호 활동 게시물에 15만건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이 중 상당수가 “상하이증권거래소를 폭격할 미사일 몇 개만 빌려 달라”는 식의 불만 글이었다고 한다. 정부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미 대사관 소셜미디어가 성난 중국 개미들의 성토장이 된 것이다.

그만큼 중국 증시는 새해 들어 흘러내리고 있다. 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H지수가 올 들어서만 9% 하락했고, 상하이·선전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300지수는 5년 만의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AI(인공지능) 특수로 미국과 일본, 유럽 증시가 호황인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픽=박상훈

지난달 중국 정부가 꺼내 든 ▲2조 위안(약 370조원) 규모 증시 안정화 기금 조성 ▲지급준비율 0.5%포인트 전격 인하▲공매도 제한 등 ‘증시 부양 3종 세트’도 무용지물이다. 대책이 나올 때마다 일회성 반등에 그칠 뿐, 하락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증시에선 지난달까지 6개월 연속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고, 그 규모는 총 145억위안(2조7000억원)에 이른다. 작년 8월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로 촉발된 증시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양상이다.

◇국내 ‘중학개미’ 시름 깊어져

이에 국내 중국 펀드 수익률도 악화 일로다. 국내 중국 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TIGER차이나전기차SOLACTIVE’ ETF(상장지수펀드)는 최근 1년 수익률이 -49%다. ‘KODEX 차이나H레버리지(H)’와 ‘KBSTAR 중국본토대형주CSI100′는 각각 -58%, -23%에 이른다.

‘중학개미’(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빠르게 발을 빼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이 상하이·선전 증권거래소에 투자한 주식 보관액은 작년 3월 말 16억달러에서 작년 12월 말엔 10억달러로 4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중국 전기차·이차전지주에 지난달 저가매수세가 유입되기는 했지만, 중국 투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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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해결책 필요”

전문가들은 시장에 유동성을 퍼붓는 일회성 대책만으로는 중국이 증시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진핑의 ‘공동부유(共同富裕)’ 같은 정책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것이 중국 증시 하락의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성장률 둔화라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는 것인데 돈으로만 막으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21년,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공동부유를 새 정책 어젠다로 내걸었다. 플랫폼 기업과 부동산 기업을 폭리를 취하는 적으로 보고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민간이 기업 육성에 대한 정부 정책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는 외국인 투자자 이탈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다. 중국인 보유 자산의 80%가 묶여 있는 부동산 가격은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하락세다.

◇금·예금으로 몰리는 중국인들

주식도 부동산도 폭락하자 불안해진 중국인들은 안전자산인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세계금협회는 지난해 중국 소비자가 매입한 금의 양이 1년 전보다 10% 늘어난 630톤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자산가치가 폭락하자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작년 4월까지만 해도 18.4%에 달했던 소매판매 증가율은 11월 10.1%로 둔화됐다. 마땅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자 예금에 돈을 묻어두는 경우도 늘었다. 씨티그룹의 켄 펑 아시아 투자전략 책임자는 지난달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중국 초고액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이 보수적으로 변했다”며 “예전에는 5% (은행 예금) 수익률을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최근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작년 7월 기준 중국의 예금 순증가액은 32조위안(6000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의 갖은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증시에 대한 회의론은 강해지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홍콩에서 연 행사에 참석한 투자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40% 이상이 중국에 대해 ‘투자 부적격’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