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친구는 서울 쪽 빌딩을 매수해서 지금 보유 자산이 두 배로 불었어요.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지방에서 매수한 제 빌딩은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어요. 정말 속이 타네요.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것 같은데, 서울 요지에 있는 100억대 빌딩을 지금 사면 어떨까요?”(50대 병원장 A씨)

허혁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수석위원은 6일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고금리·경기부진 여파로 시장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역발상 틈새 투자를 검토하는 부자 고객들이 늘고 있다”면서 “빌딩 같은 상업용 부동산은 하반기에 더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답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 위원은 지난 2009년부터 미래에셋증권에서 거액 자산가들의 부동산 포트폴리오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작년엔 투자자들이 놓치기 쉬운 부동산 투자 핵심을 담은 책 <부동산 공화국 생존지식>도 펴냈다. 큰손들의 부동산 주치의로 활약 중인 허 수석위원에게 최신 투자 트렌드에 대해 들어봤다.

허헉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수석위원은 "정부 정책이 단기간에 가격 상승을 일으킬 순 있어도 장기 상승 에너지까지 키우진 못한다"고 말했다./사진=이경은 기자

–최근 부자 고객들의 관심은?

“압구정 등 핵심 지역에 실거주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은 주택 시장에 별 관심이 없다. 아파트는 여러 채 보유해봤자 세금 부담만 커진다면서, 똘똘한 한 채(혹은 종부세가 중과되지 않는 똘똘한 두 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주택이 고점에서 20% 가량 조정 받았는데, 만약 빌딩도 비슷한 수준에서 조정 받았다면 매수를 검토하겠다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실제 거래까지 이뤄지나.

“보통 상업용 부동산은 자기돈에 대출을 끼고 매입하기 때문에 금리에 매우 민감하다. 지난 2020년 0.5%였던 기준금리가 현재 3.5%까지 높아졌으니 이자 상환 부담에 빌딩 가격도 하락했을 것이라며 ‘슬슬 하나 사볼까?’하는 상담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막상 매물로 나와 있는 건물들의 호가를 듣고 나면 다들 깜짝 놀란다. 가격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딩 호가는 왜 안 떨어졌나.

“아직까지 빌딩을 보유하면서 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싸게 팔 생각이 없다고 보면 된다. 팔 생각이 있던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자산가격 급등기에 대부분 처분했다. 서울은 빌딩 공실률이 높지 않고 시세도 유지되니까 목 좋은 곳은 급매도 잘 나오지 않는다. 다만 1000억 이상 사옥용 빌딩은 지금 매입을 검토할 타이밍이다. 그런 초대형 빌딩들은 원래 자산운용사 펀드끼리 사고 팔았는데, 고금리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현금 있는 법인에게도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한가.

“돌부처 같던 빌딩 가격이 흔들릴 요인이 꽤 있다. 코로나 전후로 빌딩 손바뀜이 활발했는데, 당시 매입한 사람들은 대출 금리가 고정 3년이었고 대부분 2%대 초반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진다. 금리 상승분이 반영되어 4%대 초반 이자를 내야 한다. 두 배로 늘어난 이자 상환 부담에 일부 빌딩 소유자들이 물건을 내놓고 있는데 호가를 떨어뜨리지 않으니 임대 수익률이 고작 3%대 초반(서울 기준)이다. 지금 당장 증권사 발행어음에 넣어도 3% 이상 받는데, 그런 빌딩을 살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매수를 미루라는 건가.

“가격 조정이 생길 요인은 더 있다. 현재 한국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부실이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말이 좋아서 ‘만기 연장’이지 사실은 ‘부실 이연’이다. 글로벌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고 매수세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에 지금까지 해결하지 않고 기다렸지만, 이제 더 이상 끌고 가긴 어렵다. 부실 사업장들이 경매에 쏟아져 나오면서 큰 장이 열릴 것인데, 문제는 가격이다. 그 동안 건축비가 30% 이상 올랐기 때문에 (사업성을 확보하려면) 경매에서 할인이 많이 되어야만 팔릴 것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 공포가 전염되면 기존 매물 가격도 조정될 여지가 높다.”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변하겠다.

“작년 10월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 중이다. 일시적 하락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2차 하락기(불황기)에 접어들었고,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지난 2006~2021년 기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평균 7만호였는데, 최근 2년간 평균 2만호 정도다. 2013~2021년에 집값이 엄청나게 올랐으니 이제 쉬면서 상승 에너지를 응축해야 한다. 물론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역대 최저 수준(1만1000호)이어서 수요 대비 공급(입주 물량) 부족이니까 오를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요인만으로 V자형 반등을 기대하는 건 성급하다. 앞서 말했듯, 조만간 PF 부실 사업장 정리도 예정되어 있어서 강한 반등이 나오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정부가 각종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정부 정책 발표와 그런 정책들이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기까지 약 3년의 시차가 있다. 부동산은 거대한 전함 같아서 한번 추세 전환을 하면 그 추세가 오래 지속된다. 게다가 지금은 소셜미디어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 받으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 때문에 정책 약발이 먹히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정부가 활성화 대책을 내기 시작했다면 ‘값이 당장 오르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 조정장이 오고 더 많은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눈여겨봐야 할 강력한 매수 시그널이 있다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것 같을 때, 정부는 규제를 순차적으로 풀기 시작한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나올 부동산 활성화 정책이 바로 대출 완화다. 당장은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해서 풀지 못하겠지만, 만약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같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다면 그때가 바로 쇼핑 타이밍이다. 아무 거나 사도 다 오르겠지만 입지가 좋은 곳이 더 오르고, 재건축이 가장 많이 오를 것이다.”

–대출규제 완화 시그널만 기억하면 되는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전세가율이다. 매매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가격 변동 없는 정체기를 맞으면 부동산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요새 누가 집을 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전세 가격이 오른다. 매매는 그대로인데 전세가 오르니까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이 높아지게 되는데, 서울 기준으로 전세가율이 60%를 넘어서면 매수를 검토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말 아파트 가격이 바닥이었을 때, 전세가율이 63%였다. 지금은 47% 정도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아직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 있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야 집값도 오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집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동성이다. 시장에 돈이 얼마나 풀렸는지 볼 때 참고하는 지표로 M2(광의통화)라는 것이 있다. 현금에 금융상품까지 전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인데, 2008년 1426조였던 M2는 작년 11월 3900조까지 증가했다. 이렇게 유동성이 늘어나는 동안, 집값도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위 그래프 참고). 입지가 좋고 수요가 몰리는 아파트일수록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M2에 수렴하는 특징을 갖는다.”

–인구가 주는데 부동산 투자는 유효한가.

“인구 감소는 이제 상수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하락론자들은 인구가 줄어드니까 주택 수요가 줄어들고, 그래서 집값이 떨어지니 집은 사지 말라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오히려 인구가 줄어서 집이 남아 돌게 되면 지역별 차별화가 극심해진다. 집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집이 어디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대학을 생각해 보라. 예전엔 대학생이냐 아니냐가 중요했지만,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는 지금은 대학 브랜드보다 어느 과에 다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총선 이후 부동산 시장을 예측한다면?

“올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3대 요인은 금리, 정책, 그리고 PF다. 정책을 예측하기 보다는 발표된 정책들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앞서 말한 ‘대출 규제 전면 철폐’와 같은 강력한 정책이 아니라면 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허혁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위원과의 인터뷰는 하편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