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명퇴 위기에 처했어요. 평범한 회사원이라 재취업은 가망 없고요. 집 빼고 현금 5억 정도 있는데, 이걸 밑천으로 수입을 만들어야 해요. 다가구 월세는 어떨까요?” “남편이 재취업했는데 새벽 출근과 야근이 일상인 블랙기업이네요. 오래 못 다닐 것 같아 걱정인데, 주변에서 상가를 사보라고 해요.”
은퇴 시점이 다가오면 부동산으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퇴직을 앞둔 시기에 부동산 투자를 한다면 현역 시절보다 더 꼼꼼히 알아 보고 의사 결정도 신중히 내려야 한다. ‘안정된 수익을 만들어 보라’면서 접근하는 업자들에게 휘둘렸다간 평생 모은 퇴직금을 날리기 쉽다.
노후에 든든한 힘이 되어 줄 부동산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 예비 은퇴자들이 꼭 알아야 할 부동산 투자 지침을 허혁재 미래에셋증권 부동산수석위원의 조언을 토대로 정리해 봤다. 허혁재 수석위원은 지난 2009년부터 거액 자산가들의 부동산 포트폴리오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지난해 초보 부동산 투자자들이 꼭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을 담아 <부동산 공화국 생존 지식>도 출간했다.
✅잿빛 노후 부르는 ‘부동산 3악(惡)’
전원주택, 지역주택조합, 분양형 호텔. 예비 은퇴자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3대 부동산 투자처다.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알 수 있는 함정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가치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내가 정성 들여 그림 같은 집을 지었다고 해도 주변에 짓다 만 집들이 흉물처럼 버티고 있으면 단지가 활성화되지 못해 손해다. 게다가 전원주택 매수 대기자들은 대부분 자기 취향에 맞게 집을 직접 지어보길 원한다. 이미 지어져 있는 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전원주택 부지를 갖고 있는데 팔리지 않아서 동네 부동산에 물어보면 ‘땅만 있으면 안 되고 집을 지어놔야 팔린다’고 한다. 이 말을 믿고 집을 지었다간 쪽박 차기 딱 좋다. 집은 팔기 위한 목적에서 지으면 안 된다. 집 짓느라 건축 비용만 더 들어갈 뿐, 집은 계속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원주택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면, 2년 만기 전세를 구해서 나와 잘 맞는지 직접 살아 보고 결정해야 한다.
도심 아파트를 팔아서 전원주택을 사고, 남은 돈을 노후 자금에 보태고 싶다는 고민도 많다. 만약 내 집이 있는데 현금 흐름이 아쉬운 경우라면, 전원주택보다는 주택연금이 더 나은 대안이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 집주인이 공시가격 12억원 이하 주택을 담보로 잡고 매달 연금을 받는 제도다. 공시가격 12억원은 시세로는 약 17억원이다.
부부 중 나이가 어린 사람의 만 나이를 기준으로 매달 받는 연금액이 고정되는데, 생일이 임박한 경우 생일 날짜가 지난 후에 가입하면 금액이 약간 더 늘어난다. 참고로 주택연금은 집값 상승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면 연금액이 깎인다. 당장 3월부터 주택연금 액수가 평균 1.5%씩 줄어든다. 단 연금액 감소는 기존 가입자와는 상관없고, 신규 신청자부터 적용된다.
✅‘10년 7% 확정’ 섣불리 믿었다간 쪽박
지역주택조합에는 ‘일반분양 아파트보다 20% 이상 저렴하다’는 홍보 문구가 따라 붙는다. 지역주택조합은 거주민들이 모여서 아파트를 공동으로 짓기 위해 주택조합을 만드는 것인데, 일종의 ‘아파트 공동구매’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런데 지역주택조합은 사업 추진 도중 좌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조합 설립 인가까지 받았다고 해도 실제 입주가 완료된 경우는 과거 18년(2004~2021년) 동안 17% 밖에 되지 않았다. 사업계획 승인 단계에서 토지 소유권이 95% 이상 확보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큰돈이 장기간 묶일 위험이 높고, 환불도 어려운 투자처인 만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5년간 확정수익 7% 보장해 드립니다’는 분양형 호텔의 단골 홍보 문구다. 약속이 지켜진다면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지만 1~2년은 잘 나오다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분양자들은 화가 날 법 하지만, 계약 위반은 아니다. 분양계약서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깨알 같은 글씨로 ‘내수 부진 등 호텔 경영이 어려워지면 약정 수익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는 ‘1차 분양’ 잡아야 유리
그렇다면 퇴직 이후 부동산 투자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신도시·뉴타운 등 대규모로 택지 개발이 되는 지역은 입지나 가격에서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노려볼 만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1차 분양 물량에 주목해야 한다. 1차 물량은 입지가 좋으면서 가격도 낮은 편이어서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1차 물량이 완판되어야 2차, 3차 등 나머지 물량도 잘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신도시라고 해도 시간이 흐른 뒤엔 가격 차가 생긴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1기 신도시였던 분당·일산의 23년간(2000년 말~2023년 말) 가격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분당 아파트값이 432% 오르는 동안, 일산은 275% 오르는 데 그쳤다. 또 2000년 말에 분당의 평당 가격은 일산보다 약 24% 비쌌는데 작년 말에는 75% 더 비싸지면서 차이가 벌어졌다. 분당은 핵심 오피스 권역인 강남 접근성이 뛰어나고 판교테크노밸리와 붙어 있고 전반적인 인프라가 좋아 탄력을 받았다. 3기 신도시 중에선 고양 창릉이 강남 등 주요 업무지구와의 교통 편의성이 뛰어나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매수한다면 교통을 최우선으로 따져봐야 한다. 특히 신설되는 철도(지하철·GTX)는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철도는 개발 발표, 착공, 개통 등 3번에 걸쳐 호가가 오른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발표한 GTX는 황금 노선인 데다 역 수도 적어서 역 주변(바로 앞)은 개통 후에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반면 GTX역과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도 GTX 호재라면서 가격이 과하게 오른 곳들은 개통 이후에 오히려 가격이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
임대용으로 아파트를 매수하려는데 자금 여력도 충분하다면, 25평보다는 33평이 낫다. 1~2인 가구 비중이 늘고 있으니 소형 수요가 더 많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소득’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한 사람이 사용하는 면적은 더 넓어진다. 또 과거에는 25평 가격 상승률이 33평보다 더 높았지만 최근에는 엇비슷해졌다.
➡️올해 서울 아파트값은 얼마나 오를까? 요즘처럼 시장이 어려울 때 내집 마련을 해야 유리할까? 허혁재 부동산 전문가와의 인터뷰 1편에 속시원한 처방전이 나와 있어요. 조선닷컴에서 여기(서울에 꼬마빌딩, 지금이라도 살까요?”... 전문가는 말리는 이유)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