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최근 국내 증시를 달구고 있는 ‘저(低)PBR주 투자 열풍’은 기업가치 제고를 압박하는 정책이 도입되면 저PBR 기업들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을 토대로 한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 가치로 나눈 것으로 이 수치가 1배 미만이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이런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등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는 경영을 하게 된다면 주가가 오른다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PBR이 낮은 수준인 기업을 골라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시장에서 (주가가) 싼 것은 찾아보면 다 이유가 있다”며 “‘밸류 트랩(Value Trap)’에 빠져 있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저PBR 종목 중에서 꾸준히 돈을 잘 벌 수 있고 주주 환원 의지가 있는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장기 저평가 이유 따져 봐야

‘밸류 트랩’이란 저평가된 가치주로 보여 투자했지만, 좀처럼 주가가 오르지 않거나 도리어 하락해 돈이 묶이는 현상을 뜻한다. 겉보기와 달리 실상은 부실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저PBR 등 밸류에이션 지표만 보고 투자했다가는 밸류 트랩의 함정에 빠져 쓴맛을 볼 수 있다.

실제 2000~2023년 연초 PBR이 1배 미만이었으면서 해당 연도 수익률이 코스피 성과를 밑돈 ‘밸류 트랩’ 기업이 평균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BR 1배 미만 기업 중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평균 54%나 됐다.

‘밸류 트랩’이란 늪에서 장기간 헤어나오지 못하는 기업도 상당수였다. PBR이 0.28배로 매우 낮은 운송업체 한진은 분석 기간 23년 중 18년간이나 코스피 성과를 밑돌았다. 교보증권은 15년, 태광산업과 휴스틸·KCC 등은 14년간 지수 대비 저조한 수익률을 냈다.

◇저PBR 투자 과열 후폭풍 우려도

업계에선 저PBR주 투자 광풍에 대한 경계심도 적지 않다. 특히 이달 중 정부가 발표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이 시장의 예상에 못 미칠 경우, 과도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증시가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각보다 파격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기업 밸류업’ 기대감이 선반영됐던 저PBR주 주가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작년 4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PBR 1배 미만인 상장사에 개선책을 요구한 것을 참고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증시 부양 성공 방식이 한국에서 그대로 통할 것이란 기대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10년 전부터 정책을 펼쳐 왔다”며 “이런 바탕이 없는 우리가 정부 말 한마디로 똑 같은 효과를 볼 거라 생각하는 건 욕심”이라고 했다. 일본은 아베 전 총리 때인 2013년부터 ‘일본재흥전략’으로 공적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고 주주친화 정책을 유도하는 등 증시 저평가 탈출의 틀을 닦았다.

◇저PBR주 옥석 가리기 중요

전문가들은 저PBR 종목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 그간 가파르게 올랐던 금융주가 지난주 실적 발표에 따라 주가 희비가 갈렸던 것처럼, 앞으로 ‘묻지마 급등’하는 저PBR주는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저PBR 주식이 상승하려면 이익이 개선되거나 자본구조가 변화하거나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며 “돈을 잘 벌면서 주주 환원 의지가 확고하고, 배당수익률이 높거나 높아질 기업들의 재평가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PBR과 함께 수익성을 나타내는 ROE(자기자본이익률)도 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ROE는 당기순이익을 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자기자본을 이용해 기업이 이익을 얼마나 냈는지 따져보는 지표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ROE가 8%를 넘으면 PBR이 우상향한다”고 했다.

☞밸류 트랩(Value Trap)

외형적으론 PBR(주가 순자산 비율)이 낮아 저평가된 가치주로 보이지만, 실상은 기초 체력이 부실한 종목이어서 만년 저PBR주의 함정에 빠져 머무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