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뷰티기기'로 유명한 에이피알 공모주 청약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올 들어 공모주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공모주 청약 열기가 과열 분위기다. 특히 설 연휴 직후 ‘공모주 수퍼위크’에선 13~15일 사흘 만에 4종목 청약 증거금에만 시중 자금이 약 20조원 몰렸다. 최근 신규 상장사들이 증시 입성 첫날부터 ‘따따블(공모가의 4배 상승)’에 성공하자 투자 열기가 뜨거워졌다.

15일 청약을 마감한 올해 첫 기업공개(IPO) 대어(大魚) 에이피알엔 이틀간 증거금이 13조9000억원 몰렸다. 증거금을 많이 넣을수록 많은 주식을 받는 비례 물량에서 1주를 받으려면 증권사에 따라선 3억원 가까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양인성

◇설 연휴 이후 20조원 빨아들여

이날 에이피알 대표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15일 오후 4시 마감 기준 평균 1112대1이다. 에이피알은 ‘유재석 화장품’ ‘김희선 미용 기기’ 등으로 유명한 뷰티 테크 기업이다. 전날인 14일 공모주 청약을 마감한 주사현미경 업체 코셈, 디지털 트윈(가상 모형) 전문 업체 이에이트, 날씨 정보 플랫폼 케이웨더는 각각 3조220억원, 1조800억원, 1조7000억원의 증거금을 끌어모았다. 이들은 각각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이 906억원, 1900억원, 696억원인 중소형주다. 13~15일 이 4종목에 몰린 증거금은 총 19조7000억원에 달했다.

지난 2020년 LG에너지솔루션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 당시 서울 마포구 KB증권 한 지점에서 고객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2024년 설 연휴 이후 4개 종목 청약 증거금으로 7조원이 몰리는 등 공모주 열기가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공모주에 청약하려면 공모가의 절반을 증거금으로 넣어야 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사흘간 자신이 갖고 있는 ‘총알(투자금)’을 여러 종목에 분배하느라 ‘눈치 작전’이 벌어졌다. 14일 청약이 마감된 3종목의 증거금은 16일에 환불되기 때문에 자금이 묶이면 에이피알에 청약할 돈이 일시적으로 없을 수 있다.

한 투자자는 “이번 주 청약 종목 중 가장 덩치가 큰 에이피알에 넣으려니 투자금이 모자라 가족들 돈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모두 끌어모았다”고 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아무리 자금을 동원해도 비례 배정에 2억원 이상 든다는 에이피알은 청약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하고 코셈에 증거금을 몰아넣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따따블’시 한 주당 75만원 수익

이날 에이피알 청약은 최소 청약 주식 수(10주)에 증거금률 50%를 적용해, 공모가 25만원 기준 125만원을 넣어야 응모가 가능했다. 균등 배정 주식 수는 최소 청약 기준, 신한투자증권이 0.064주, 하나증권이 0.059주 수준으로 100명 중 5~6명만 받을 수 있다. 균등 배정 제도는 투자금이 적어도 투자자들이 한 주씩은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는데, 사실상 ‘뽑기’가 된 셈이다.

앞서 코셈, 이에이트, 케이웨더도 균등 물량 경쟁률이 치솟으며, 에이피알까지 4종목 모두 균등 물량 청약을 해도 1주도 못 받는 ‘빵빵빵빵(4건 청약해도 1주도 못 받는 것)’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균등 배정 제도가 무색해지자 비례 배정으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대출까지 동원하는 과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률을 감안하면, 비례 물량 증거금으로 신한투자증권에선 약 2억8800만원, 공동 주관사인 하나증권에선 2억3000만원을 넣어야 에이피알 1주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돈이 몰린 이유는 1주당 최대 75만원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상장하는 에이피알이 ‘따따블’에 성공해 주가가 100만원이 됐을 때를 가정해서다.

그래픽=양인성

◇'돈 놓고 돈 먹기’ 투자판

실제로 올 들어 우진엔텍, 현대힘스 등이 따따블에 성공했다. 14일 이 두 종목 주가는 공모가와 비교해 각각 468%, 163% 수익률을 냈다.

올해 HD현대마린솔루션, 시프트업, 롯데글로벌로지스, 케이뱅크, 서울보증보험 등 예상 기업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는 기업 공개가 예정돼 있어 한동안 공모주 열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증시 관계자는 “증시 활황 땐 공모가가 부풀려지지만, 부진할 때는 공모가가 낮게 설정돼 투자자들이 상장 후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 최근 공모주 시장에 돈이 몰리는 이유 중 하나”라며 “다만 공모주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과열 양상으로 ‘돈 놓고 돈 먹기’ 식 투자가 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공모가 산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