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증시를 보면, 과거 일본을 보는 것 같아요. 뭘 해도 오르지 못하는... 한국은 이제 대외 자산도 많아졌고 순채권국이 됐는데도 주식 시장만 답이 없네요.”(20년차 증시 전문가 A씨)

미국, 독일, 프랑스, 대만, 인도, 호주... 올 들어 전세계 주요국 증시가 연이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한국 증시는 좀처럼 상승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에 불어 닥친 ‘탈중국’ 기조 속에 한국에도 9조원 가까운 외인 자금이 유입됐다. 어느 정도 큰 금액이냐면, 역대 외국인 코스피 순매수 금액으로 봤을 때 8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코스피는 마이너스의 늪에 빠져 있다.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기는커녕, 역주행하고 있다.

16일 일본 닛케이평균이 34년 전 거품 경제 시기에 기록한 3만8500엔을 장중 돌파하면서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연합

그런데 ‘잃어버린 30년’이 지속되고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으로 주가가 정체되었던 일본은 올해 180도 달라진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평균은 최근 1년 동안 37%(14일 기준) 올라 전세계 1위 수익률을 기록했다(2위는 나스닥 33%).

16일에도 일본 닛케이평균은 장중 1.9% 올라 3만8865엔까지 찍으면서 지난 1989년 초호황기에 기록했던 역사점 최고치(3만8915)에 바짝 다가섰다. 전세계에 불어 닥친 ‘탈(脫)중국’ 기조의 최고 수혜자는 일본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일본 스타트업인 인포리치의 스테판찬 CEO는 “보통 연말연시에는 중국이나 홍콩 등으로 직접 출장가야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일본 시장을 알고 싶다는 외국인 투자자 문의가 쇄도해 거의 매주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는 일본 증시가 지루한 30년 박스권’에서 탈출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20년차 증시 전문가 A씨는 “인구가 줄고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본은 아베 정권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금융완화와 실질금리 마이너스 정책을 펼쳤다”면서 “그 결과 ‘실패에 대한 기회 비용’이 낮아졌고 (환율은 많이 올랐지만) 수출 실적이 좋아지고 내수는 외국인 관광이 채워주면서 경기가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물가가 오르니 일본 서민들은 많이 힘들어지긴 했지만, 일자리가 많아졌기 때문에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게 됐다”면서 “한국과 일본은 어차피 경제 구조도 비슷하고, 일본이 했던 것과 하고 있는 것들은 다 따라 하고 있는데, 결국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정책 노선(초저금리·양적완화)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참고로 일본은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가 1990년대부터 시작됐고, 한국은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日 버블 붕괴 후 34년... 증시 격차는?

그렇다면 일본 증시는 버블 붕괴 이후 어떤 흐름을 보였을까. 일본 닛케이평균이 역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1989년 12월(3만8915.87엔)을 기준점으로 해서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4개 주요국 증시의 장기 성과를 비교해 봤다.

그 결과, 미국 증시는 지난 34년 동안 주가가 14배 올라 압도적인 1등이었다. 만약 34년 전 미국 다우지수에 연동되는 펀드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현재 계좌에 14억원이 찍혀 있다는 얘기다(배당·환변동 제외). 올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인 독일 증시도 34년 동안 10배 상승해 존재감을 뽐냈다. 반면, 일본은 34년 동안 주가가 거의 오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했다. 한국은 코스피 기준 34년 동안 2.9배 올라 영국과 비슷한 상승률이었다. 다만 한국은 34년 동안 국내총생산(GDP)가 10.5배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