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탈(脫)중국 자금이 아시아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인도, 대만 증시는 역대 최고치고, 일본도 많이 올랐잖아요. 반면 한국 증시는 거의 오르지 않았고 정부가 정책도 내놓는다고 하니 외국인 자금이 밀려오는 거죠.”(운용사 임원 A씨)
올해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에 탄력이 붙으면서 여의도 증권가가 들썩이고 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까지 코스피에 유입된 외국인 순매수(매수에서 매도를 뺀 것) 자금은 10조1630억원에 달한다. 아직 2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연도별 외국인 코스피 순매수 금액 기준 역대 8위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다.
외국인의 왕성한 매수세는 정부가 지난달 17일 민생토론회에서 상장사 기업 가치 개선을 유도하겠다며 예고한 ‘기업 밸류업(가치 상승) 프로그램’이 단초가 됐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오는 26일 발표 예정인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을 벤치마킹했는데, 일본은 대표지수(닛케이평균)가 1년간 40% 오를 정도로 정책 효과가 컸다”면서 “일본 증시에서 주가가 급등한 학습 효과 때문에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 욕구는 매우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주식 쇼핑 리스트를 보면, 그동안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던 상장사들이 많다. 지난달 17일 이후 이달 16일까지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최애 매수 종목은 ‘현대차’였다. 현대차는 기업 실적과 배당 수익률 등에 비해 주가 흐름이 부진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 운동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현대차 주가는 19일 25만2500원에 마감했는데, 올해 주가 상승률이 26%에 육박한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현대차 주가가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월의 사상 최고가(26만7500원)를 깰 것인지에 쏠린다.
2위는 삼성전자였는데, 순매수 금액은 약 7600억원으로 1위와 금액 격차가 컸다. 이 밖에 SK하이닉스, 기아,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한미반도체 등의 종목에 외국인 ‘사자’가 몰렸다. 현대차, 기아, 삼성물산, KB금융 등 외국인이 폭풍 매수한 기업들의 주가는 대부분 1년 신고가를 경신했다.
하지만 실적 개선 없이 단순히 정책 기대감만 갖고선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되긴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올해 한국 시장에 유입되는 외국인 자금 성격이 장기 투자인지, 아니면 단기 트레이딩인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특히 오는 4월 총선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순탄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