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성인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 인생 후반전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고물가·고령화 시대일수록 노후는 더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홀로 서기를 미루는 자녀 때문에 장밋빛 인생 말년 계획이 틀어졌다며 속상해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예비 은퇴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는 성인 자녀 뒷바라지에 대한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22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부모에게 손 벌려서 살아가는 30~40대 성인 자녀는 64만9000명에 달한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부모 돈으로 생활하는 ‘백수 캥거루(독립할 나이에도 부모에 의존하는 사람)’부터 직장이 있으면서도 부모 집을 떠나지 않는 ‘한집 캥거루’까지 다양하다.

황명하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부모 세대는 본인들의 노후 준비는 잠시 미루고 희생한다는 개념으로 자녀 지원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자녀의 재무 독립이 늦어지고 지원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노후 파산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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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60% “자녀 뒷바라지하겠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의 경제적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달 본지가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인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알아봤더니, 성인 응답자 1011명 중 57%가 ‘결혼한 자녀에게도 재정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답했다.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하지 않겠다’는 응답자 비율은 26%에 그쳤다.

또 부모 집에 얹혀 사는 30~40대 캥거루를 주변에서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5%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자녀가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할 적정 나이로 20~30대를 꼽았다.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하려면 어느 정도의 소득이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서는 ‘월 300만원’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설문 결과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선 노후 준비보다는 자녀 지원이 우선이라는 부모들이 많다. 문제는 자녀 뒷바라지가 금방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입 N수, 교환학생, 취업 준비, 만혼(晩婚)·비혼(非婚) 등으로 자녀의 사회 진출 시기가 계속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효도는 ‘적기 독립 선언’

70대 A씨 부부는 매달 받는 연금 22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부부가 알뜰하게 살면 크게 모자라지 않는데, 문제는 장남이다. 곧 마흔이 되는 장남은 인간관계가 힘들다며 20년째 일하지 않고 있다. A씨는 “현역 시절 월급이 나왔을 땐 괜찮았지만, 은퇴해서 연금만 나오는 지금은 매달 50만원 적자”라며 “부족한 생활비는 퇴직금 통장에서 조금씩 빼서 쓴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일본에선 A씨처럼 중년 자녀를 돌보는 노부모들의 사연이 넘쳐난다. 중년 자녀들이 고성장 시대에 자산을 많이 축적한 70~80대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재무 컨설턴트 하타나카 마사코(畠中雅子)씨는 “A씨가 사망한 다음엔 연금 소득이 줄기 때문에 남은 가족은 집을 매각하고 월세가 싼 임대주택으로 이사 가는 것이 최선”이라며 “행복한 은퇴 생활을 꿈꾼다면 자녀 독립을 1순위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년기에 맞닥뜨릴 자녀 리스크를 막으려면,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자녀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자녀의 사회 진출과 독립 생활이 무난했던 시절엔 캥거루족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부모가 모든 걸 해줄수록 자녀의 의존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특정 시점이 되면 자녀의 인생에서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부모의 노후 생활에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가르쳐야 한다. 자녀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면, 똑같은 금액을 본인 노후 준비에 쓰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자녀 교육비로 월 50만원을 지출했다면, 부부 연금에 월 50만원을 입금하는 식이다. 노년기에는 목돈보다 연금이 더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