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 지수인 닛케이평균이 지난 22일부터 3거래일 연속해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한 가운데, 글로벌 자금의 일본행(行)이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달 일본 증시에 유입된 외국인 순매수(매수에서 매도를 뺀 것) 금액은 2조693억엔(약 18조3000억원)에 달했다. 1월만큼은 큰 금액은 아니지만 2월에도 외국인 매수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16일까지 순매수 금액이 6415억엔(약 5조6800억원)을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외국인이 일본 증시에서 하루 평균 7000억원씩 순매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거래소그룹 IR부 와가츠마아이라(我妻アイラ)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일본 증시가 지난 22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30여년 전의 ‘버블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면서 “해외 투자자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있는데 지난달 순매수 금액은 1982년 이후 7번째로 많은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1월 둘째주 순매수 금액(약 1조엔)은 과거 아베노믹스 강세장에 필적할 만한 큰 금액이라고 와가츠마씨는 덧붙였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주가가 오르지 않아서 ‘재팬 패싱(Japan Passing·일본증시 기피)’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바이 재팬(Buy Japan)’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와가츠마씨는 “일본 상장사들은 오랜 기간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였는데, 30년 넘게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 지속되면서 기업 활력이 떨어진 영향이 컸다”면서 “디플레 시대에는 설비·인적자원에 투자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들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만 해도 일본 주요 기업 1000곳의 ROE(자기자본이익률)는 4%대에 머물렀다. ROE는 기업이 주주 자본을 활용해 1년 동안 얼마나 수익을 냈는지 알려주는 수치로, ROE가 높을수록 경영 효율성이 좋다는 의미다. 가령 ROE가 10%라고 하면, 1000만원을 투자해 100만원을 번다는 의미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ROE가 15%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고려하면, 일본은 저(低)ROE 국가였던 셈이다.
2013년 시행된 아베노믹스(양적완화·구조개혁 등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는 오랜 기간 이어진 디플레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다. 와가츠마씨는 “지난 2022년 4월 도쿄거래소가 종전 5개였던 시장 체제를 3개(프라임, 스탠다드, 그로스)로 통합 재편한 것도 10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혁의 일환이었다”면서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했다”고 말했다.
도쿄거래소는 시장 체제를 정비하면서 상장 유지 기준도 대폭 강화했다. 한 번 상장한 후에 기업 가치 개선 노력은 하지 않고 마치 ‘온실 속 화초’같은 상장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와가츠마씨는 “2025년 3월부터 시장별 상장 유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들은 1년 동안의 개선 기간을 거쳐 2026년 3월부터 상장 폐지된다”면서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들은 선택에 따라 조건이 느슨한 하위 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최상위 부문인 프라임 시장의 상장 유지 기준은 상당히 까다롭다. 주주 수 800명 이상, 유통주식 수 2만단위 이상, 유통주식 시가총액 100억엔(약 889억원) 이상, 유통주식비율 35% 이상, 하루 평균매매대금 2000만엔(약 1억8000만원) 등의 조건을 지켜야 한다.
최근 한국이 일본의 증시 개혁을 벤치마킹해서 ‘밸류업(기업가치 개선)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 와가츠마씨는 “거래소는 상장기업들이 특정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의무화하거나 강제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원칙준수·예외설명(Comply or Explain)의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상장사들은 거래소가 요청한 원칙을 준수하되, 만약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엔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도쿄거래소는 지난 달부터 상장사들이 거래소 요청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체크해서 매달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