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투자가 전문인 글로벌 헤지펀드부터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까지, 상당한 외국인 자금이 이미 한국에 들어왔고 대기 중입니다. 일본 정부가 증시 부양 정책을 내놨을 때 반신반의하다가 수익 기회를 놓친 경험 때문이죠. 한국 시장은 놓치지 않겠다고 합니다.”(헤지펀드 대표 A씨)

“외국인은 정부의 밸류업(가치 상승) 프로그램이 시간은 걸리겠지만 시장이 변화하기 위해 첫발을 떼었다고 보는 것 같아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때 개미들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실망감에 팔았지만, 외국인은 계속 샀어요.”(운용사 대표 B씨)

올해 2월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8조원 넘게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한 것으로 집계됐다. 월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종전 최대는 2013년 9월의 7조8263억원이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예고하자 외국인들은 ‘바이 코리아(buy korea)’에 나선 것이다. 반면 국내 개인 투자자와 기관 등은 같은 기간 8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국내 증시 엑소더스(대탈출)에 나섰다.

그래픽=백형선

◇외국인 순매수 사상 처음 8조원 돌파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월 한 달간 외국인은 코스피, 코스닥을 합친 국내 증시에서 8조2408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한 달간 사들인 규모로는 가장 큰 것이다. 코스피 시장에서만 7조8579억원어치를 사들여 역시 역대 최대였다. 코스피의 기존 외국인 순매수 기록은 작년 1월의 6조5495억원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요즘 매일 외국인 미팅을 1~2회씩 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한국 시장은 왜 이렇게 싼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어떻게 흘러가느냐’ 같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고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일본, 대만 등 전 세계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크게 오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한국 증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인들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한국 주식을 사기 때문에 앞으로 원화 강세가 되면 환차익도 노릴 수 있다는 점, 반도체 경기 회복 기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낮아졌던 외국인 지분율 등 외국인 매수세에 불을 붙일 요소가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계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시아 태평양 수석 연구원은 “한국 증시를 견인하는 반도체 업종이 올해 회복하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국 증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한편 27년 차 펀드매니저인 민수아 삼성액티브운용 대표는 “한국 증시에선 반도체 쇼핑이라는 공식이 깨진 것처럼 외국인 매수 색깔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실제 2월 외국인 순매수 1위는 현대차다. 현대차 주가는 올 들어 25% 오르는 등 강세였다. 그 뒤를 SK하이닉스, 삼성물산, 삼성전자 우선주, 기아가 잇고 있다. 삼성전자는 7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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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엑소더스’ 개미는 美·日로

반대로 국내 개미(개인 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2월 한 달간 강한 매도세를 보였다. 박스권에 갇혀 그동안 ‘물려 있던’ 개미들이 차익 실현에 나섰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개미들은 2월 한 달간 코스피에서 6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특히 현대차를 2조원 넘게 팔아 치우면서, 현대차가 개인 순매도 1위 종목이 됐다.

개미들은 국내 증시에서 빼낸 자금을 미국이나 일본 증시로 옮기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8일까지 2월 한 달간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결제액은 약 1조8200억원 규모다. 1월 대비 한 달 만에 87% 증가했다.

개미들은 2월 일본 주식을 약 1180억원 순매수했다. 전달보다 10% 감소했지만, 작년 2월 약 237억원을 팔아 치운 것과 달리 올해는 순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증시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에서 저평가 종목의 주가 상승에 베팅한 반면, 개미 투자자들은 주가가 다소 오르자 팔아 치우며 차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