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와 실물 경제 괴리가 너무 커서 기뻐할 수 없다.”
7일 일본 대표 지수인 닛케이평균이 장중 4만472까지 올라 또다시 장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일본 재계(財界) 수장의 우려 섞인 비판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 3대 경제단체인 경제동우회 대표 간사를 맡고 있는 니나미다케시(新浪剛史) 산토리홀딩스 회장은 6일 공개된 잡지 슈칸분슌(週刊文春) 인터뷰에서 “외국인 자금은 리턴(수익)을 바라며 일본에 오는 것”이라며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 있는 상황인데, 주식 시장과 실물 경제의 괴리감이 커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엔저(円低) 효과로 이익을 많이 낸 수출 대기업들의 수혜가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에게까지 돌아가는 낙수효과(trickle down)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니나미 회장은 “임금이나 물가 등의 경제 지표를 봐도 실물 경제는 주식 시장만큼 과열되지 않았다”면서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일본 주식을 사서 주가를 끌어 올린 외국인들이) 바로 주식을 팔아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니나미 회장은 이어 “대다수 일본인들은 ‘주가가 올라서 신난다’면서 환호하기 보다는 ‘경기가 좋지 않으니까, 증시 랠리(강세장)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차갑게 바라본다”면서 “실제로 과거 버블 시기와는 달리, 지금은 들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도 말했다.
닛케이평균은 최근 1년 동안 20% 가까이 상승했는데, 상당 부분 외국인 투자자 자금이 끌어 올린 것이다. 일본 개인들의 주식 시장 참여는 미미했다. 그래서 니나미 회장의 지적처럼, 일본 현지 언론에는 ‘주가는 활황이지만,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는 대중들의 목소리가 많이 보도되고 있다. 과거 버블 시기를 경험했던 50~60대 이상 세대는 특히 더 그렇게 말한다.
한 70대 은퇴자는 최근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일본 주식을 갖고 있지 않으니 주가가 올라도 전혀 좋을 게 없다”면서 “버블 시기엔 물가가 올랐지만 그 이상으로 급여가 올랐기에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가 너무 올라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보면 일본 경제는 여전히 냉골이다. 물가를 반영한 근로자 실질임금은 지난 1월까지 22개월 연속 줄고 있다. 월급이 오르는 것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오르니, 지갑을 열기 어렵다.
또 일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작년 4분기에 0.4%(연율 환산) 감소했다. 작년 3분기(-3.3%)에 이어 2분기 연속 역성장이다. 개인 소비와 설비 투자가 모두 부진한 것이 원인이었다. 달러로 환산한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독일에 밀려 세계 4위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주식 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찍어도 정권 지지율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3일 발표된 일본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22.9%로, 5개월 연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명품 보석 사려고 백화점 오픈런
그렇다면 버블 시기의 일본 사회는 도대체 어땠길래 다들 ‘저세상’이었다고 입을 모으는 걸까. 유튜브와 트위터 등 SNS에는 당시 일본 사회를 보여 주는(혹은 그리워하는) 사진과 영상이 많다.
버블이 정점을 찍던 1990년, 일본 남성들 사이에선 여성들에게 미국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의 오픈하트 목걸이를 선물하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아래 사진은 199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도쿄 긴자의 미츠코시백화점에 오픈런(개장하자마자 입장)해서 모여 있는 남성들의 모습이다. 한 50대 여성은 “핸드백이나 보석, 옷 등 내 돈으로 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남성들에게) 선물을 많이 받았다”면서 “겨울에는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 가고, 여름에는 골프를 치거나 해외에 여행 가서 명품을 사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도쿄 이케부쿠로 백화점에선 승마용 말을 팔았는데, 한 마리에 1000만엔이 넘는 고가였지만 완판됐다. 청춘들은 매일 밤 늦게까지 파티를 즐겼다. 새벽에 택시 잡기가 너무 어려워서 1만엔짜리 지폐를 창문에 대고 흔들어야만 간신히 탈 수 있었다고 한다. 돈을 끌어 모았던 회사들은 직원들에게도 인심이 후했다. 한 50대 남성은 FNN뉴스 인터뷰에서 “사원들을 격려한다면서 수백명에게 공짜 한국 여행을 시켜줬고, 현지 여행비로 쓰라고 10만엔(약 90만원)까지 줬었다”고 말했다.
도쿄 긴자의 인기 클럽에서 마담을 하고 있던 마이코씨<아래 사진>는 닛케이평균이 사상 최고점을 찍었던 34년 전과 지금 상황이 무척 다르다고 말한다. 당시 긴자 클럽에서 일했던 그녀는 1년에 8000만엔(약 7억원)씩 돈을 벌었다. 매일 밤 손님들이 현금 다발을 손에 쥐고 찾아 왔고, 매장이 꽉 차서 발길을 돌린 손님들이 부지기수였다.
마이코씨는 “명절 전에는 손님들이 팁이라며 기모노 목 뒷부분에 현금을 꽂아줬는데 집에 돌아와서 털어 보면 지폐가 우수수 떨어졌다”면서 “2년 만에 도쿄 고급 주택가에 내 집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긴자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마이코씨는 “당시도 지금처럼 엔저(円低)였지만 수입이 좋았기 때문에 물가나 생활비 같은 걱정은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회사들이 접대비를 많이 줄여서 예전처럼 손님들이 돈을 펑펑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에 생활비가 걱정인 마이코씨는 클럽이 한가한 평일 밤을 골라 주 2회 식당 요리사로 변신해 투잡을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