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20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행보가 점차 엇갈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해 일제히 금리 인하에 나섰다가 엔데믹(풍토화)에 따라 긴축(금리 인상) 스텝을 밟기까지 지난 4년간 거의 동행했다. 하지만 이젠 각국 경제 상황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분위기다. 미국과 유럽은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반면, 경기 부양이 시급한 중국은 지난달 역대 최대 폭으로 기준금리를 낮췄다. 일본은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이 끝나간다고 보고, 최근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래픽=양인성

◇美 5연속 동결, 연내 인하는 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20일(현지 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동결했다. 작년 9월·11월·12월과 올해 1월에 이은 5회 연속 동결이다. 연준은 성명서에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향하고 있다는 더 큰 확신을 얻을 때까지 금리를 낮추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라며 기존의 신중론을 재확인했다. 올해 미국 신규 일자리 증가세가 두 달 연속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어 월 20만~30만명대를 기록하는 등 고용시장이 여전히 강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준은 연내 세 차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은 고수했다. 당초 시장에선 올 1~2월 소비자물가 등 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연준이 올해 금리 인하 전망을 3번에서 2번으로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이 (물가) 데이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과잉 해석해서도 안 된다”며 “인플레이션이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2%를 향해 점진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기는 올 6월이 유력하게 꼽힌다. 미국 기준금리 전망을 집계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에서 6월 금리 인하 확률은 70%로 하루 새 15%포인트 넘게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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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같은 길 가는 유럽

물가 우려가 큰 유럽도 일단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진 않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4.5%로 4회 연속 동결했다. 홍해 지역 무력 긴장이 높아질 경우 물류비가 치솟아 물가를 재차 자극할 위험이 있는 데다 역사적 고점 수준인 임금 상승률(작년 4분기 4.5%)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도 미국과 같이 6월 금리 인하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가 깊어지고 있어 마냥 금리 인하를 미룰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올해 유럽 성장률 전망은 작년 말 대비 0.2%포인트 낮은 0.6%으로 하향 조정됐다.

◇금리 올리는 日, 내리는 中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연 -0.1%로 마이너스(-)였던 기준금리를 0~0.1%로 인상했다. 작년 일본 소비자물가(신선 식품 제외)가 3.1% 상승하며 일본은행 목표(상당 기간 2%)를 뛰어넘는 등 고질적 디플레이션(저물가 속 침체)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도요타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최대 규모의 임금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 구조가 마련된 것도 통화정책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반면 중국인민은행은 지난달 20일 주택 담보 대출에 적용되는 사실상의 기준금리인 5년물 대출 우대 금리(LPR)를 연 4.2%에서 연 3.95%로 전격 인하했다. 금리 인하 폭은 역대 최대였다. 그만큼 중국은 경기 부양이 시급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국 GDP(국내총생산)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시장은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다. 중국 24개 주요 부동산 개발 업체의 올 1월 주택 판매가 전년 대비 45% 급락했을 정도다. 소비 심리도 얼어붙어 있다. 지난달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중국 설)의 1인당 여행 소비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대비 90% 수준에 그쳤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최근 일본은행과 미국 연준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차별화가 가시화되는 상황”이라며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관계 기관 간 긴밀히 공조해 대응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