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차 사서 오래 타면 되잖아요. 타고 싶은 차를 사서 즐겨야지, 새 차 뽑으면서 팔 생각을 왜 해야 하나요?”
한국에선 신차 구매를 할 때 디자인이나 연비 효율을 많이 따지지만,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중고차 가격도 꼼꼼히 살펴본다. 중고차 가격 하락이 심하지 않은 차를 구매해야 경제적인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차 가격이 아무리 싸도 나중에 되팔 때 헐값으로 떨어지는 차량은 구입을 꺼린다.
송선재 하나증권 애널리스트(자동차 담당)는 “차량 소유자 입장에서 경제적 요인만 본다면 처음 지불한 가격보다는 총소유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이 더 중요하다”면서 “TCO는 ‘신차가격+유지수리비-중고차가격’의 산식으로 산출되는데 중고차 가격이 높으면 TCO가 낮아지므로 (탄탄한 중고차 시세는) 소비자 선호도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중고차 가치를 가장 잘 방어하는 차량 모델은 무엇일까?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보험개발원 통계를 활용해 신차 대비 가격 하락 비율이 적은 차량을 국산차와 수입차로 나눠 분석해 봤다.
✅가격방어 뛰어난 우등생은 SUV
11일 보험개발원이 국산 차량 모델 52개의 2019년 신차가액과 2024년 차량가액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신차 가격 대비 잔존 가치가 높은 ‘가격 방어 우등생’은 모두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였다.
차량가액은 현재 시점에서의 자동차 가치를 의미하는데, 자동차 보험료와 보험금 지급의 기준이 된다. 보험요율 산정 전문기관인 보험개발원이 3개월마다 발표한다. 보수적으로 책정하기 때문에 수요·공급에 예민한 중고차 시장의 실제 거래 가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5년 동안 가치가 덜 떨어져서 가격 방어력이 좋았던 차량 모델 3위는 현대 코나(소형 SUV)였고, 2위는 현대 싼타페(중형 SUV)였다. 1위는 대형 SUV인 현대 팰리세이드였다. 이들 SUV 3총사는 차량 가격의 잔존 가치가 51~55%로, 모두 50% 이상이었다. 잔존 가치가 42~43%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열등생들과 비교하면 격차가 컸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SUV는 실용성이 좋고 판매 시점에 이벤트성 할인이 거의 없는 데다 수요가 꾸준해서 감가(減價)가 덜하다”면서 “내부 공간이 넓어 가족들이 편안하게 탈 수 있고, 운전석이 높아서 시야가 좋기 때문에 여성 운전자 선호도도 높다”고 말했다. 차는 클수록 좋다는 거거익선(巨巨益善) 트렌드 때문에 혼자 사는 싱글족도 SUV를 살 땐 팰리세이드를 고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팰리세이드는 출시 초기에 대기자가 엄청 많았고 매물도 많지 않아서 중고차가 신차 가격에 팔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면서 “차를 살 때 출고일까지 오래 걸리지 않고 당장 내일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딜러가) 말한다면 감가가 매우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차량 모델별 잔존 가치를 세부 모델들의 평균값이 아니라, 280개로 더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기아 K5의 더 뉴 K5 1.6 터보가 잔존율 56%로 1위였다. 2~4위는 현대 싼타페(R2.0→R2.2→2.0T), 5~8위는 현대 팰리세이드(3.8 2WD→2.2 2WD→3.8 4WD→2.2 4WD), 9위 기아 RAY(THE NEW RAY 1.0 LPi), 10위 현대 아반떼(더뉴아반떼AD 스마트스트림 G1.6) 순이었다.
✅수입차 원탑은 포르셰 카이엔
수입차 444개 모델 중에서는 포르셰 카이엔의 ‘The New Cayenne’가 잔존율 48%로 1위를 기록했다. 2~4위는 BMW 620d xDrive GT, 520i, 620d GT 순이었고, 재규어 F-Type P300이 잔존율 46.8%로 5위를 기록했다. 이밖에 혼다 Civic 2.0, 도요타 렉서스NX, 크라이슬러 JEEP All New Wrangler 2.0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전기차 대표 주자인 테슬라는 상위 10위 리스트에는 들지 못했고, 잔존율 40.5%로 중간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수입차 평균 잔존율 범위는 최소 36.5%에서 최대 48%까지 퍼져 있었는데, 국산차 잔존율(41~56%)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국산차와 수입차의 차량가객 산정 기준이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에 잔존율에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민우 직카 대표는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판매량이 줄어들면 재고 처리를 하기 위해 할인 행사를 크게 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차 가격이 싸지면 중고차 시세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민우 대표는 이어 “신차 인기가 좋으면 시간이 흘러도 잔존 가치는 높게 유지되는데,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층이 선호하는 블랙 대형차는 받아줄 수요가 없기 때문에 가격 방어가 잘 되지 않고 감가가 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