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다는 게 상상이 안 갔어요. 40년 일하고 퇴직했는데, 사회에서 밀려난 느낌이 듭니다.” “퇴직 후 처음엔 집에 있는 게 좋았는데 어느 순간 답답해지더군요. 나만의 일상 루틴을 만들어서 밖에 나가니까 훨씬 낫습니다.” “바쁘게 일하다가 얻는 휴일이 가장 꿀맛이란 걸, 퇴직하니까 알겠네요.”

누구나 겪지만 막상 닥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은퇴 생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막막하다. 이럴 땐 한 발 앞서 은퇴를 경험한 인생 선배들의 충고가 가장 피부에 와 닿는다. 나보다 앞서 퇴직한 선배들의 귀한 경험담을 들으며, 좋은 건 내 것으로 만들고 후회하는 건 피해서 더 행복한 노후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 잡지 프레지던트가 지난 달 70~80대 남녀 4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인생 선배들이 추천하는 은퇴생활 꿀팁을 ‘돈·삶·몸’으로 정리해 봤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1️⃣돈→여행에 쓰는 돈, 아깝지 않더라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노후 생활비’다. 현직에 있을 땐 고정적으로 근로 소득이 나오니까 생활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만, 퇴직 후엔 현금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혹시 돈이 일찍 바닥나서 오래 사는 게 불행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실제로 인생 후반전에서는 ‘경제력’이 노후 삶의 방식을 좌지우지한다. 경제적 만족도가 높은 은퇴자와 그렇지 않은 은퇴자의 삶은 온도차가 컸다. 인생 3대 악재 중 하나가 노년빈곤(老年貧困)이라는데,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다른 두 가지는 초년출세·중년상처).

‘경제적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답한 이른바 ‘은퇴 만족군’에게 소비 패턴을 물었더니, ‘돈을 써야 할 땐 아끼지 않고 쓴다’가 대세였다. 응답 비율이 47% 달해 2명 중 1명꼴이었다.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는 항목으로는 여행이 압도적인 1위(65%)를 차지했다. 이 밖에 취미활동(51%), 건강관리(46%), 지인교류(42%), 평생학습(32%) 등도 돈값 하는 소비처로 꼽혔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인 ‘다 쓰고 죽어라(Die with Zero, 번역본 미출간)’에 따르면, 노후 가정 경제가 안정적인 사람들은 인생을 ‘경험의 합계’라고 생각하며 지갑을 연다. 돈을 맹목적으로 쌓아두기만 해선 결코 행복해지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경험’에 돈을 써야 ‘가치 소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노후 생활에 연착륙한 ‘은퇴 만족군’은 재테크DNA도 장착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42%가 ‘투자’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절반 가량은 미국·일본 등 주식 투자 경험이 있었고, 펀드와 달러예금 등에 가입한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반면 ‘부동산 투자를 해서 좋았다’는 응답 비중은 6% 정도로 낮았다.

한편, 경제적 만족도가 낮다고 답한 ‘은퇴 불만족군’의 노후 생존법은 ‘자린고비’였다. ‘절약한다’를 선택한 비율이 46%로 가장 높았고 통신비나 OTT구독료 같은 고정 비용을 줄이겠다는 응답자도 4명 중 1명꼴이었다.

2️⃣삶→감사·칭찬이 부부 사이 바꾸더라

자녀들이 성장해 부모 곁을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부부 둘만 남는다. 기나긴 인생에 부부가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내면 좋을 게 없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삐걱거린다면, 은퇴 생활 만족도는 높아지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은퇴생활 만족군’도 노년기 인간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배우자’를 꼽았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내가 앞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도 ‘배우자’라는 응답이 단연 1위(82%)였다. 자녀가 힘이 되어 준다고 답한 비율은 6%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나이 듦의 기술’의 저자 호사카다카시(保坂隆)씨는 “부부 관계를 개선하려면 감사의 말과 칭찬만큼 효과적인 치료제는 없다”면서 “남편이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는 체를 하면 ‘당신은 아는 것도 많네’라며 기(氣)를 살려주고, 외출복으로 차려 입은 아내에게 ‘오늘 예쁜데?’라고 칭찬하는 작은 노력이면 된다”고 했다.

은퇴 부부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부부 혹은 가족 여행’을 추천하는 응답자들이 가장 많았다. 여행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새로 알아가고, 또 여행지에서 뇌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을 하라는 것이다. 물가는 저렴하면서 사계절 내내 따뜻한 동남아에서 한달살이를 시도해 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혼자보다는 부부가 같이 떠나야 좋다. 어디로 놀러 갈까,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뇌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3️⃣몸→말년엔 누죽걸산 기억하라

은퇴 생활을 떠받치는 기둥은 ‘돈’이다. 돈이 있어야 여행도 떠나고, 취미에도 몰두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몸이 편치 않아 침대에 누워 병치레하며 지내야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건강하게 오래, 내 발로 걸으면서 100세까지 사는 것이 중요하다. 50대 작가 송모씨는 “젊을 때는 글로벌 경제나 사업 확장에만 관심 갖던 성공한 CEO들도 50대 후반에 접어드니까 건강 관리 비법을 대화의 주제로 삼고 정보를 공유하더라”고 말했다.

건강 만족도가 높은 은퇴자들이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운동 1위에는 ‘걷기’가 꼽혔다. 응답자의 75%가 추천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한국에는 ‘나이 들면 누죽걸산(누우면 죽고 걸어야 산다)’이라는 말이 있는데, 일본 고령자들 역시 걷기를 통해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100세까지 걷는다’의 저자 다나카나오키(田中尙喜)씨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자기 발로 걸어다니려면 일상 생활에서 근육과 관절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면서 “걷기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했다. 다나카씨는 이어 “젊을 땐 나도 펄펄 날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근력은 저축이 되지 않으므로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면서 “나이가 들어 일상 활동량(운동량)이 줄어들면 근섬유가 가늘어지고 노쇠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의학 칼럼니스트이자 의사인 나가오가즈히로(長尾和宏)씨도 “현대 사회의 질병은 대부분 걷지 않아서 발생한다”면서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에게 걷기를 생활화하면 확실히 나아진다고 항상 말한다”고 말했다. 나가오씨는 “환자들에게 걷기를 권하면 다들 힘들어서 싫다고 하는데, 걸으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자연적인 면역력도 높아져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 선배들이 추천하는 운동 2위에는 스트레칭이 뽑혔고, 3위에는 체조가 이름을 올렸다. 상위권에 랭크된 운동은 모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면서 후유증도 거의 없고 돈이 들지 않는 가성비 운동이었다. 등산은 4위였고, 골프는 6위, 자전거 타기가 7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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