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말고는 다른 소득이 없는 65세 은퇴자입니다. 집은 내가 살 집 한 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작년에 아파트 한 채를 더 사서 2주택자가 되었네요.”

지난 4일 조선일보에 ‘종소세 1255만명 최다… 5월의 날벼락’ 기사가 나간 뒤, 60대 남성 독자 A씨가 이메일을 보내 왔다. 현역 시절 서울에 살았던 A씨는 은퇴하면서 지방으로 이주했고, 현지에서 작은 아파트를 매수해 아내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A씨는 “은퇴 후엔 유동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서울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매각했고 지방으로 내려 왔다”면서 “서울집을 팔고 난 뒤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라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지금은 집사람과 마음 편하고 건강하게 인생을 즐기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선진국 노인처럼 배당생활 꿈꿨지만...

A씨는 은퇴 후 거주지로 지방 소도시를 선택했고, 생활비가 서울보다 적게 들어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지방이라도 고물가 시대에 월 138만원씩 나오는 국민연금만으론 부부가 살기에 빠듯하다.

부족한 생활비는 여유자금(4억~5억원)을 초우량주에 투자해 나오는 배당 수익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한국에선 낯설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은퇴자들은 배당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서 노후 생활을 윤택하게 가꾼다. 고령자들이 연금과 배당으로 노후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야 국고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에 정부도 적극 권장한다.

하지만 A씨는 배당을 두둑하게 주는 우량주 보유 물량의 절반을 작년에 덜어냈다. 그가 싼값에 매수해 장기 투자하고 있던 상장사들이 주주 환원을 높이겠다며 배당액을 늘렸는데, A씨에겐 오히려 독이 든 사과가 됐기 때문이다.

배당금이 2000만원을 훌쩍 넘어 세금과 건강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날 위험에 처한 것이다. 배당소득이 1년에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최고 세율 49.5%) 대상자가 되어 온갖 절세 혜택이 사라지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보험료 면제)에서도 탈락해 가계 부담이 커진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말년에 1가구 2주택자가 된 사연

A씨 부부는 현재 국민연금(138만원)과 국내 주식 배당금(세후 141만원)을 더한 월 279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우리 집 실소득은 연 3348만원(월 279만원)으로, 2024년 정부에서 정한 복지서비스 대상자 선정 기준인 중위소득(월 368만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에요. 지금보다 더 공격적이면서도 안정적인 고배당주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죠. 하지만 투자 중인 기업이 배당을 늘리겠다고 하면 세금과 건보료 부담 때문에 ‘팔아야 하나’ 고민하고, 짠물 배당을 하는 기업을 찾게 되니 아이러니하죠.”

A씨는 작년에 배당주를 매각해 손에 쥔 현금 용처를 고민하다가 집 근처 소형 아파트를 한 채 더 매입해 전세를 줬다. A씨는 “그 동안 균형을 이뤘던 부동산과 금융자산 비중이 추가로 아파트를 더 사는 바람에 부동산 쏠림이 발생하게 됐다”면서 “은퇴하면 유동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다들 말하지만 현실에선 현금성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은퇴자가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실소득은 24년도 2인가구 중위소득에도 미달하는데, 배당소득 2000만원이 초과한다는 이유로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되고 건보료 부담까지 더해진다니 은퇴자 입장에선 고민일 수밖에 없죠.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내놓고 배당을 늘리라고 권고하지만, 연금과 배당으로 살아가는 은퇴자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A씨와 같은 은퇴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해서 받는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분리과세를 해주거나 지난 2013년부터 11년째 고정되어 있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2000만원)을 가파른 물가 상승에 맞춰 높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A씨는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자격에서 탈락하는 금융소득 기준이 지난 2022년 연 3400만원에서 연 2000만원으로 낮아졌는데, 이것만이라도 다시 3400만원으로 되돌려 준다면 노후 생활에 큰 보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선진국엔 많은 ‘배당부자 할아버지’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배당이 노년기에 부(富)를 키워나가는 중요한 투자 수단이다. 배당도 소득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지만, 한국처럼 과도한 부담이 주어지는 곳은 없다.

가령 주식 시장이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선 배당소득세가 15%로 분리과세된다. 영국과 홍콩은 배당소득세가 아예 없다. 일본은 배당소득 과세 방식이 여러가지인데, 종합과세(다른 소득과 합산)와 분리과세(배당만 따로 계산) 중에서 각자 유리한 것을 골라 세금을 내면 된다.

일본 은퇴자들은 대부분 주식·배당의 이익과 손실을 전부 통합해서 계산하는 신고분리과세 방식을 선택한다. 배당을 1000만원 받았어도 주식으로 1000만원 손해를 봤다면 상계 처리가 되어 내야할 세금이 없다. 국세청에 확정신고는 해야 하지만, 원천징수를 선택하면 단일세율(20.315%, 주민세 포함)이 적용되어 간단하다. 분리과세 소득은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에서도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