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지드래곤, 류준열, 임시완, 한지혜, 성유리, 페기구….
지난 9일 저녁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30에 있는 건물로 이들이 들어갑니다. 건물 밖에는 이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팬들과 취재진이 서 있습니다. 연말 시상식장을 방불케 하는 이 행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폴랑의 가족들이 방한해 국내 최초로 개최한 전시 ‘폴랑, 폴랑, 폴랑’. 그리고 이곳은 배우 이정재가 설립한 ‘아티스트컴퍼니’, 그리고 그가 대주주로 있는 ‘아티스트 유나이티드(전 와이더플래닛)’의 본사 건물입니다.
내부로 들어가니 이정재는 폴랑의 부인 마야, 그의 아들 벤자민, 며느리 알리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의 연인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 공동 창업자인 배우 정우성의 모습도 보입니다. 폴랑의 전시는 어떻게 이정재의 회사 건물에서 열리게 된 것일까요?
‘돈이 되는 여기힙해’는 두 번째 이야기는 배우 이정재의 기업들, ‘아티스트 유나이티드’와 ‘아티스트 컴퍼니’, 그리고 ‘래몽래인’입니다.
◇가구를 예술의 경지로 바꾼 ‘폴랑’
프랑스 출신인 폴랑은 ‘가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 거장입니다. 1970년 프랑스 엘리제궁 내 퐁피두 대통령의 개인 공간을 장식했고, 1983년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집무실을 꾸몄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드농 윙, 파리 시청의 태피스트리 홀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은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2009년 별세한 그를 대신해 지금은 그의 아들 벤자민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블랙핑크 제니 가구로 유명합니다. 벤자민은 “아버지는 생전 여러 차례의 한국 여행을 통해 풍부한 영감을 받았다”며 “한국과 프랑스간 예술적 교류를 도모하고자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벤자민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고 이정재의 팬이 됐다고 합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교류 차원에서도 한번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현재 이정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배우입니다. 국내에서는 ‘오징어게임 2′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고, 스타워즈 새 시리즈 ‘애콜라이트’ 홍보를 위해 미국을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벤자민의 연락을 받자마자 무료로 본사 로비와 지하를 전시 공간으로 내주고, 하루를 온전히 빼 각종 인터뷰와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역시 폴랑의 팬이기 때문입니다.
◇폴랑의 팬이었던 이정재
이정재의 원래 꿈은 공간 디자이너였습니다. 배우가 된 지금도 그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공간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사는 집, 그의 회사와 사무실, 그가 운영했던 레스토랑은 모두 그가 디자인한 공간입니다. 그가 폴랑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가구의 자태에 매혹되었던 그는 폴랑이 젊은 디자이너일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1950년도부터 활동한 거장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폴랑의 가구들은 지극히 현대적인 형태이기에 아무 장소에나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늘 뜻밖의 장소에서 폴랑의 디자인을 만나게 됐죠. 그의 가구는 공간의 여백을 생각하게 하는 디자인이자 공간 속에 들어가 멋진 캐릭터의 역할을 하는 존재예요. 수많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융화되지만, 자신만의 고유함을 잃지 않는 배우라는 직업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폴랑의 가구는 유기적인 곡선과 순수한 디자인적 상상으로 인해 과거의 시대적 배경을 머금고 있는 반면 근미래의 모습과도 근사하게 어우러집니다. 그는 폴랑의 가구들을 바라보며 로맨틱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고, SF 영화 속 근미래의 어느 시점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폴랑을 오랫동안 좋아했기에 벤자민의 연락을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할 수밖에 없었지요. 폴랑의 즐거운 디자인 상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그가 가구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철학과 시대를 초월하는 디자인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보길 바랬어요.”
◇기업가로서의 이정재
지난 9일 발표된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이정재는 아티스트유나이티드 428억원, 래몽레인 62억원 등 490억원 규모의 주식재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내 주요 문화·콘텐츠 주식 종목 중 주식평가액 100억원 이상의 개인 주주현황’ 순위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아티스트유나이티드가 문화 콘텐츠 주식이 아닌 시스템 개발 업종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정재는 2016년 배우 정우성과 연예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를 설립합니다. 고아성, 박소담 등의 배우 20여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영화·드라마 제작으로 분야를 넓힙니다. 영화 ‘헌트’,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 등이 아티스트컴퍼니에서 제작됐습니다.
아티스트컴퍼니는 2022년 종합 콘텐츠 기업 컴투스와 위지윅스튜디오가 1050억원을 투자해 경영권(지분 51%)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려다 5개월 만에 무산된 바 있습니다. 계약이 진행되는 동안 이정재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고, 정우성은 드라마 ‘고요의 바다’로 촉망받는 제작자가 됐기 때문입니다. 기업 가치가 몇 배는 뛰어버린 상황. 원래 가격대로 인수가 진행될 리 없습니다.
이후 이정재는 새로 투자자를 찾는 것이 아닌, 지난해 말 정우성과 함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반의 광고 플랫폼 회사 ‘와이더 플래닛’을 120억원을 주고 인수합니다. 지난 3월에는 50억원을 투자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드라마 제작사 ‘래몽래인’을 인수합니다. 그리고 ‘와이더 플래닛’은 지난 3월 사명을 ‘아티스트유나이티드’로 바꾸며 사업 목적에 영화, 드라마 제작, 연예 기획사, 매니지먼트, 극장용 상업 영화 제작 및 국내·외 판매 배급 사업 등을 추가합니다. 본사도 ‘아티스트 컴퍼니’가 있는 도산대로 430으로 변경합니다. 빅데이터 기반의 콘텐츠 제작과 아티스트 지식재산권(IP) 수급, 이를 활용한 커머스까지 ‘종합 문화 콘텐츠 그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중 상장사인 ‘아티스트유나이티드’와 ‘래몽래인’은 지난 총선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 테마주로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이정재와 한동훈은 현대고 동창으로 함께 밥을 먹은 사진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져 이정재에게 물었습니다.
“대표님의 기업가로서의 목표, 최종 야망은 무엇인가요?”
그는 답했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들의 창작물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곳.”
◇국내 첫 폴랑 전시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디자인과 영화’라는 컨셉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영화나 TV를 통해 보여왔던 작가의 작품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탐구합니다. 1963년 디자인돼 MoMA 컬렉션에 포함된 ‘텅그체어’, 1980년대 제작된 다이아몬드 모양의 테이블 ‘카테드랄 테이블’, 1983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을 위해 만들어진 ‘미테랑 안락의자’ 등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관람비는 무료, 의자는 앉아 볼 수 있고, 테이블도 사용해볼 수 있습니다. 이날은 폴랑의 부인 마야의 생일이어서 파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관람시간은 월~금요일 오후 1~6시. 예약을 통해 관람 가능하며 문의 및 예약은 무료로 이곳(rendezvous@paulinpaulinpaulin.com)으로 하시면 됩니다. 디지털 파트너로는 아트 플랫폼 ‘아투(@artue.io)’가 참여해, 아투 사이트에서도 피에르 폴랑의 대표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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