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증권사가 인간 애널리스트 대신 ‘AI(인공지능) 애널리스트’에 분석을 맡겨 기업 실적 분석 리포트를 낸 게 증권업계에서 화제다. 우선 속도에 놀랐다. 실적 발표 후 자료를 수집하고 도표화 등에 5시간쯤 걸리던 리포트 작성 시간이 15분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하지만 ‘매수’ ‘매도’ 등 투자 판단을 제시하진 않았다. 업계에선 “AI를 활용하면 분석 종목 확대와 업무 효율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애널리스트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AI 리포트, 투자 의견 제시 못해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7일 애플, 스타벅스, 엑손모빌 등 미국 기업 3곳의 올 1분기(1~3월) 실적 분석 리포트를 AI를 활용해 제작해 공개했다. 미래에셋은 자체 개발한 ‘AI애널리스트’에 6개월쯤 3곳의 주식 정보를 학습시켰다고 한다. 이번 실적 발표 때 이 AI 애널리스트는 기업 공시 자료가 나온 후 자동으로 주요 데이터들을 획득했고, 주가 추이를 반영해 초고를 작성하고 그래프와 표를 그렸다고 한다. 이후 인간 애널리스트가 영어 번역이 잘못된 부분 등을 1~2분 정도 다듬었다고 한다.
이 AI 리포트를 작년 1분기에 인간 애널리스트가 작성해 발간한 실적 분석 리포트와 비교해보면 차이가 발견된다. AI 리포트에선 인간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보고서 작성자가 아닌 ‘감수자’로 명시돼 있고, AI로 작성됐다는 게 상단에 표시되어 있다. 아이폰 매출액, 애플의 일본 매출 등 주요 지표와 AI 모델의 예측치를 비교해 제시하는 AI 통합 시계열 분석, 기업 CEO(최고경영자) 등의 과거 공식 석상 발언들을 AI가 뽑아내 정리한 코너도 있다.
다만, AI 리포트는 인간 애널리스트의 리포트처럼 실적 추정이나 목표 주가를 제시하고 매매 판단을 하는 등의 투자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현재 공개된 자료나 수치를 빠르게 정리하는 데 머물렀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목표 주가나 투자 의견을 제시하는 게 지금도 가능하나 리포트에 공개할 만큼 충분히 검증되지는 않았다”며 “향후 실제 실적 데이터로부터 검증이 되면 차차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AI 리포트가 수치 위주의 담백한 리포트여서 개인 투자자보다 기관 투자자가 많이 읽을 것 같다”고 했다.
◇”일자리 위협” 대 “업무 효율화”
증권가에선 AI 리포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AI가 애널리스트 역할을 대체하면서 애널리스트란 직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AI 분석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시장 분석에 있어 자신만의 특기가 있어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송인규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제 증권사 자체가 AI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며 “헤지 펀드의 퀀트 트레이딩 기법같이 매우 어려운 정량 분석도 이제 AI를 공부하면 누구나 구현할 수 있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은 더 나아간 분석으로 존재 가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애널리스트의 단순 작업을 최소화해 분석 종목을 넓힐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데이터 기반의 계량적 분석은 AI가 일정 부분 할 수 있겠지만 미래 산업 전망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며 “담당 산업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 등 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간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기업 60% 생성형 AI 사용
해외에선 이미 분석 작업뿐 아니라 업무 자동화에 이런 생성형 AI가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생성형 AI는 AI 애널리스트처럼 글, 자료 같은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AI를 가리킨다. 지난 9일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미국 잡지 포천과 발표한 ‘글로벌 CEO 서베이’에 따르면, 전 세계 20개 산업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CEO 107명 중 58%가 “업무 자동화 부문에 생성형 AI를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CEO 56%는 “생성형 AI 도입으로 운영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을 최우선적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