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경2125조원 대 2655조원.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시장을 합한 시가총액과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코스닥, 코넥스를 합한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비교한 것이다. 약 27배 차이다. 한국의 시가총액은 애플(약 3883조원) 한 회사보다 적다. 그런데 상장사는 한국이 시장 규모 대비 상대적으로 많다. 미국 상장사는 5637개로, 한국 상장사(2692개)의 2배쯤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이나 대만과 비교해도 비슷하다. 일본 전체 상장기업은 3829개로 한국보다 42% 정도 많은데, 시가총액은 224%나 크다. 대만 주식시장은 시가총액은 2762조원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상장기업은 1016개로 절반 수준이다. 대만 시가총액의 30%를 차지하는 TSMC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도 삼성전자가 20%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차별점이 되지 않는다.
시장 규모 대비 상장사 수가 너무 많다 보니 한국은 잡주들의 천국이 됐다는 말을 듣는다. 한 번 상장하면 부실 기업이 돼도 퇴출이 쉽지 않아 ‘좀비 증시’라는 별명도 있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증시에 신규 상장된 기업 대비 퇴출된 회사 비율이 20%대에 그쳤는데, 이는 미국 146.2%, 일본 72.7%에 비해 매우 낮다” 며 “시장 수급 상황에 비해 많은 기업이 상장된 상태로, 좀비기업이 상장폐지되지 않고 남아 시장 신뢰를 해치는 것이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거론된다”고 했다.
◇상장은 쉬운데, 퇴출은 어렵다
미국 주식시장은 상장도 쉽고 상장폐지도 쉬운 ‘다산다사(多産多死)’인 반면, 한국 주식시장은 ‘다산난사(多産難死)’라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2년 31개였던 상장폐지 기업은 2023년에는 22개로 더욱 줄었다.
그간 상장 문턱은 계속 낮아져 왔다.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기술 특례 상장’의 기준을 낮추고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한 ‘테슬라 요건 상장’, 실적이나 경영 성과도 보지 않는 ‘성장성 특례 상장’ 등 다양한 특례 상장이 생기면서 상장 문턱이 낮아졌다. 기술 특례 상장이란, 기술력과 성장성 있는 회사지만 현재 재무여건상 기업공개가 어려운 기업이 상장할 수 있게 마련된 제도다. 2005년 도입됐고, 2017년부터는 상장 주관사의 성장성 평가를 통과하면 상장할 수 있도록 제도가 확대 개편됐다. 2017년부터는 ‘테슬라 요건 상장’과 ‘성장성 특례 상장’ 제도도 시행됐다.
스타트업을 키운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자격이 안 되는 기업들이 그 틈새로 상장할 수 있었다는 게 문제다. 작년 8월 코스닥에 입성한 반도체 회사 ‘파두’는 기술 특례 상장으로 데뷔했지만, 상장 당시 ‘한 해 매출 1200억원’을 자신했다가 실제 분기 매출이 4억원도 안 되면서 기술 특례 상장의 유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 주식 시장에 상장된 수백개의 바이오 기업 중 미국 나스닥에 상장 가능한 것은 1%도 되지 않는다”며 “경쟁력 없는 스타트업들이 정부 자금에 의존해 양산되고 상장까지 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작전세력에 이용당할 우려
반면 퇴출당하는 기업은 적다. 거래소가 2009년 상장폐지 실질 심사 제도를 도입했는데, 실질 심사 과정에서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할 수 있도록 개선 기간이 주어지고, 관련 소송이 진행되면서 거래정지 상황이 길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상장폐지 대상이 된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반발도 거세다.
한 투자업계 상장업무 관계자는 “지난 감마누 사건 이후 거래소 분위기도 상장 폐지에 더욱 소극적으로 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감마누 사건이란, 지금은 휴림네트웍스로 이름을 바뀐 감마누라는 코스닥 상장사가 지난 2018년 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결정을 받았지만, 법적 공방 끝에 상장폐지 결정 무효 판결을 받아낸 사건이다.
한 증시 관계자는 “상장사 명맥만 유지하면서 시가총액이 적은 좀비 기업들이 작전 세력 등의 타깃이 돼서 시세조종 당하고 각종 불공정 행위 등에 악용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도 이런 문제를 인식해, 연내에 상장폐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