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다음 달 말 ‘블록딜(Block Deal) 사전 공시 의무제’ 시행을 앞두고 일부 기업에서 최근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씩의 주식을 미리 팔아 치우는 블록딜이 나와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블록딜은 투자금 확보 등을 위해 기관 투자자나 주요 주주들이 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 주식을 대량 매매하는 걸 말한다. 최근 예고 없는 블록딜로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소액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블록딜에 주가 급락 잇달아

정부가 다음 달 24일 시행하는 ‘블록딜 사전 공시 의무제’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상장사 임원이나 지분율 10% 이상인 주요 주주가 발행주식 수 1% 이상을 거래할 때 가격, 수량, 기간을 블록딜 90일 이전부터 최소 30일 전까지 공시해야 하는 게 골자다. 위반 시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주요 주주들의 거래를 미리 알려 예고 없는 블록딜로 인한 개인 투자자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제도 시행을 두 달여쯤 앞두고 일부 상장사에서 미리 수천억 원 규모의 주식을 블록딜로 매각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하이브는 지난달 28일 SM 주식 약 75만5000주(약 683억9000만원)를 블록딜로 팔았다. 이날 SM 주가는 5.32% 급락했고, 다음 날도 4.63% 떨어졌다.

지난달 21일엔 벤처캐피털 BRV캐피탈매니지먼트가 이차전지 핵심 소재 생산 업체인 에코프로머티의 지분 약 2046억원어치를 블록딜로 매각했다.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이날 에코프로머티 주가는 12.52% 하락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6일 장 마감 후 최대 주주인 HD한국조선해양이 지분 3%(66만3000주)를 3497억원에 처분했다. 다음 날 주가는 7.33% 떨어졌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왜 서둘러 블록딜에 나서나

이들이 블록딜에 나선 이유는 투자금 확보, 상속세 납부 등 다양하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이들이 사전 공시 의무제 시행 이전에 블록딜을 서두른 데는 사전 공시 기간 동안 주가가 지속적으로 빠져 전체 매각 대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블록딜을 하면 매수자가 주식을 다시 팔면서 시장에 유통 주식이 늘어난다. 또 주요 주주의 주식 대량 매도 자체가 회사 경영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 그래서 주가를 끌어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그동안 주요 주주들은 예고 없이 최대한 빠르게 블록딜을 진행했다. 그러나 사전 공시 의무제를 시행하면 공시 시작과 실제 블록딜 사이에 30~90일의 시차가 생긴다. 이 기간 주가가 떨어지면 손에 쥘 주식 매각 대금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증권가 관계자는 “블록딜 할인율은 실제 매각일 직전 기준가(종가)에서 책정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사전 공시로 한 달 이상 잠재 오버행(대량 대기 매물) 이슈 등으로 주가 하락이 계속되면 결국 기준가 하락 효과로 매각 대금도 크게 감소하게 된다”라고 했다.

이 외에도 사전 공시 기간에 매출 증가 등 호재가 나와도 주가 상승이 쉽지 않다는 점, 공매도(차입 주식 매도)가 재개될 경우 블록딜 사전 공시와 동시에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 등도 블록딜을 서두르는 배경이란 분석이다.

◇“블록딜, 무조건 악재는 아냐”

다만, 블록딜 자체가 무조건 주가에 악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블록딜의 목적 자체가 투자금 확보나 기업 운영에 긍정적인 것이라면 주가가 오를 수도 있다. 실제 지난 2021년 5월 신약 개발 기업 에스티팜이 350억원 규모의 블록딜을 진행했지만, 투자자들에게 코로나 백신 생산을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발표 이후 주가는 5% 넘게 상승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좋고 실적 대비 주가 수준도 나쁘지 않을 때는 블록딜로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가 곧바로 대량의 물건을 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개인 투자자들은 한동안 예고 없는 블록딜로 인한 주가 급락에 주의해야 하겠지만, 미래 투자를 위한 블록딜인지 여부 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블록딜(Block Deal)

블록딜이란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들이 사전에 시간, 가격, 물량 등을 정해 놓고 주식을 덩어리째 매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중에 주식이 대량으로 풀릴 경우 시장 가격에 영향이 클 수 있어 장 시작 전후 시간 외 매매로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