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서울 시내 한 학교의 교장인 김모(62)씨는 올해 말 정년 퇴임을 앞두고 건강보험료 걱정이 크다. 직장 가입자에서 지역 가입자로 전환되면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의 배우자는 현재 전업주부이고, 아들은 최근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은퇴 후 김씨의 주된 예상 소득은 매월 지급되는 교직원 연금 300만원이다. 또 김씨는 강동구에 시세 14억~15억원(공시가격 9억원) 상당의 본인 명의 아파트도 한 채 소유하고 있다. 김씨처럼 퇴직을 앞두고 건강보험료 부담을 느끼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 부담을 줄이려면 피부양자 등록 요건을 꼼꼼히 따져보고, 어려울 경우 건강보험료를 낮출 다른 방안들도 고려해 봐야 한다.

◇피부양자, 소득 요건과 재산 요건 둘 다 충족해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하게 되면 자신이 따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피부양자 등록을 해도 자녀 등 부양자의 건강보험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부양자의 건강보험으로 병원비 등 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자녀나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소득 요건과 재산 요건이 모두 기준에 맞아야 한다. 우선, 소득 요건은 연간 합산 소득이 2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합친 금융소득은 1000만원 초과인 경우에만 산정하고, 1000만원 이하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금융소득이 999만원이면 없는 것으로 치지만, 1001만원이면 1001만원을 소득으로 본다는 뜻이다. 사업소득은 매출액에서 필요경비를 빼고 계산하고, 기타소득 역시 필요경비가 있다면 이를 제외한다. 연금소득은 사적연금은 제외하고 공적 연금 수령액으로만 판단한다. 즉 금융소득, 사업소득, 기타소득, 공적 연금 소득의 총합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고 지역 가입자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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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양자 등록을 위해서는 소득 요건뿐 아니라 재산 요건도 만족해야 한다. 재산세 과세표준이 9억원을 넘으면 피부양자가 될 수 없다. 재산세 과세표준이 5억4000만원 초과 9억원 이하 구간에 포함된다면 연간 합산 소득이 1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재산세 과세표준은 공시가격에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곱해 계산한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주택은 60%(단 1가구 1주택은 43~45%), 주택 이외의 토지·건축물은 70%다. 앞서 김씨는 재산세 과세표준이 4억500만원(공시가격 9억원X1주택 45%)으로 재산 요건은 충족하나, 공적 연금 수령액이 매달 300만원씩 연간 3600만원으로 소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피부양자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국민건강보험 임의 계속 가입제도 똑똑히 활용해야

김씨의 배우자의 경우는 어떨까. 배우자의 경우 부부 중 한 사람이 소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다른 배우자 역시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다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소득 요건은 기준에 부합하지만 재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다른 배우자가 요건을 모두 만족할 경우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 김 씨의 경우 공적 연금 수령액이 연 3600만원으로 소득 요건을 위반했기 때문에, 김씨의 배우자 역시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이 경우 부부의 모든 소득과 재산을 합산해 지역 가입자로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김씨가 은퇴 후 지역 가입자로 내야 할 건강 보험료는 월 28만원 정도로 예상된다.

김씨처럼 퇴직을 앞두고 있다면 ‘국민건강보험 임의 계속 가입 제도’를 눈여겨볼 만하다. 건강보험 임의 계속 가입 제도는 신청자에 한해 3년간 과거 직장에서 본인이 부담한 수준으로 건강보험료를 유지시켜주는 제도다. 단, 반드시 지역 가입자로 전환된 후 최초로 받은 지역 보험료 고지서의 납부 기한에서 2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이 이후에는 신청이 불가능하다.

임의 계속 가입자가 항상 유리한 것은 아니다. 퇴직 직전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아 건강보험료가 높게 산정됐다면 지역 가입자가 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앞서 김씨는 임의 계속 가입 제도를 신청할 경우 매달 약 32만원의 건강보험료가 부과돼 임의 계속 가입 제도를 신청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

◇피부양자 될 수 없다면 직장 가입자 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지역 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에 대해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소득의 약 8%가 연간 부담해야 할 보험료다. 반면, 직장 가입자는 재산이 많아도 오로지 소득에 대해서만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직장 가입자는 근로소득의 4%에 대해 보험료가 부과되고, 근로소득 이외의 다른 합산 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의 8%에 대해 추가적인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피부양자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을 갖고 있어 재산에 대한 건강보험료가 부담된다면 지역 가입자보다는 직장 가입자가 더 유리할 수 있다. 직장 가입자가 되기 위해 꼭 새로 취직할 필요는 없다. 은퇴 후 노후에 소소하게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면 법인으로 창업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하다. 예를 들어 사례의 김씨가 노후에 하고 싶었던 카페를 법인으로 창업해 대표이사로 월 80만원 정도의 근로소득이 생긴다면, 직장 가입자로 부담해야 할 건강보험료는 월 8만5000원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 경우 김씨는 근로자가 아닌 실질 임원이므로 급여가 낮아도 최저임금법을 위반하지 않는다. 다만 단순히 건강보험료 절감을 위한 허위 직장 가입자로 적발되면 건강보험료 외에도 가공경비에 따른 세금 등을 추가로 추징당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