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요즘 친구들은 와인을 안 마실까요?”
와인업계 사람들과 만나면 나누는 주요 고민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만 해도 와인은 가장 힙한 술이었습니다. 내츄럴 와인 등 다양한 와인들이 소개되고, 혼술이나 홈파티에서 와인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량은 5만6542t으로 전년 대비 20.4% 감소했습니다. 수입량은 2021년 7만6575t으로 정점을 찍은 후 2년 연속 하락세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국제와인기구(OIV)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와인 소비량은 2억 2100만 헥토리터(Mhl)로, 2022년보다 2.6% 감소했습니다. 와인 소비량의 정점이던 2007년 약 2억 2500만Mhl와 비교해서는 약 12% 감소했습니다.
와인 종주국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 와인협회에 따르면, 매일 와인을 마시는 이탈리아인들의 수는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에 40만 명이 감소했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40%가 65세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지난해 와인 수입업체 실적도 악화했습니다. 국내 와인 수입·유통업계 1호 상장사인 나라셀라는 지난해 매출 853억원, 영업이익 2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20.4%, 98.4% 급감했습니다. 순이익은 17억원의 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했습니다. 지난 21일 주가는 4775원으로 최근 6개월 사이 17.81% 하락했습니다.
와인이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을까요? 왜 Z세대들은 와인을 소비하지 않을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여덟번째 이야기는 ‘와인’입니다.
◇술 마시는데 잔소리?…꼰대들의 술
“밥 먹을 때 한 두잔 마시는 건 좋았죠. 그래서 ‘와인 좋아한다’했더니 그 때부터 자칭 전문가들의 잔소리가 시작되는 거예요. ‘어떤 품종의 와인을 좋아하냐, 그 와인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수집은 하느냐, 잔은 어떤 걸 쓰느냐, 그렇게 마시면 안 된다. 와인은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 어휴, 그래서 그냥 안 좋아하기로 했어요.” (28세 전문직 A씨)
Z세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격식 탈피’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와인을 마셔야 할 때 지켜야 할 100가지 법칙’ 같은 건 의미 없게 다가옵니다. 특히, 대부분이 많은 해외 생활로 “정작 유럽 사람들은 막잔에 편하게 마시던데?”라며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불편해합니다.
코로나 시절, 와인 소비가 과열된 것도 그들의 흥미를 떨어뜨립니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수십 만원짜리 와인이 아니면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민망합니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 와인 전문가는 “국내 와인 모임에 해외 부자들도 자주 마시지 않는 와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가짜 와인 주의보까지 내려졌습니다.
와인을 표현하는 용어도 너무 어렵습니다.
“얼씨(흙냄새·earthy)하고 미네랄(광물·mineral)이 강하다는데, 진짜 그걸 느껴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요?”
패션계 ‘보그체’가 화제였다면, 와인업계는 ‘평론가체’입니다. 전 세계 와인 종류는 (아마도) 수억 가지. 그 어떤 평론가도 모든 와인을 아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Z세대들이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것도 와인 소비가 줄어든 요인입니다. 이들의 특징을 지칭하는 신조어는 ‘소버큐리어스’, 의식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은 운동을 즐겨하고, 근육이 손실될까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마신다고 해도 한 두 잔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 따면 가능한 빨리 다 마셔야 하는 와인은 부담스러운 술이 된 것이지요.
◇잔술 팔고, 로제 파티, 보석 시음 안내도
와인 수입업계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젊은 층을 와인으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에노테카는 ‘로제 와인’을 무기로 뽑아 들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와인이 쇠퇴한다고 해도, 레드 와인에 비해 화이트와 로제는 선방하고 있습니다. 프로방스 와인 생산자 및 상인의 조합(CIVP)에 따르면, 프로방스 지역 로제 수출량은 15년 새 500%나 성장했다고 합니다. CIVP는 로제의 인기에 대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와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프로방스의 롤스 로이스로 불리는 도멘 오뜨입니다. 주력 모델인 방돌 로제의 경우 할인점에서 4만원대에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크리스토프 코폴라 리나드 앰버서더는 “로제 와인은 만들기는 까다롭고 물량도 적은 편이지만, 아시아 음식, 특히 매운 음식에도 다 어울려 매칭하기는 쉬운 편”이라며 “로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힙한 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1883년에 설립된 세계적인 와인 회사 ‘비냐 콘차이토로’와 손잡고 와인을 런칭하며 ‘주얼 오브 더 뉴월드’ 컬렉션이라는 컨셉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콘차이토로 그룹이 보유한 9종의 와인을 아쿠아 마린·에메랄드·토파즈 등 9개의 보석과 연결해 상품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칠레의 떼루뇨는 ‘다양성과 장인정신’을 키워드로 다채로운 보석인 오팔과 연결했고, 100년 이상 된 오래된 포도나무로 생산하는 아르헨티나의 트리벤토 에올로는 토파즈와 연결해 ‘지혜와 시간’을 표현했습니다. 또한 140여 년 역사를 가진 마르께스 데 까사 콘차 헤리티지는 ‘인내와 뛰어남’을 키워드로 브라운 쿼츠 원석과 만났습니다. 이사벨 길리사스티 부사장은 “세 나라에서 생산한 9개 브랜드를 하나의 콘셉트로 선보이는 것이 사실상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며 “디지털 세상에 익숙한 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시음 노트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영FBC는 잔술 매장을 만들고 직접 트렌디한 레스토랑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젊은 층과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작년 말에는 서울 잠실 에비뉴엘에 잔술을 판매하는 ‘클럽 코라빈 위드 떼레노’를 열었고요. 서울 신사동의 ‘사브서울’, 세빛섬의 ‘무드서울’, 명동 ‘모와’ 등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인스타그램용 사진 찍기에도 좋은 핫플로 불리더라고요. 결국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 경영자의 능력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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