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텐’, ‘지오지아’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의류 업체 신성통상이 자진 상장폐지를 위해 잔여지분 공개매수에 나섰다. 신성통상은 지난 10년 동안 이익잉여금을 쌓아놓기만 하고 배당을 하지 않다가 작년에야 주당 50원을 배당했는데, 이번 자진상폐를 계기로 배당금을 대폭 늘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그룹 내 지주사 격인 가나안과 계열사 에이션패션은 지난 21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신성통상 주식 3164만4210주(22.02%)를 주당 2300원에 공개매수하고 있다. 총 727억원을 들여 회사를 비상장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나안은 신성통상 창업주인 염태순 회장 아들 염상원씨가 지분 82.43%를 보유한 비상장사다. 에이션패션은 가나안과 염 회장이 지분 전량을 갖고 있다.
신성통상은 이미 가나안(42.1%), 에이션패션(17.66%), 염태순 회장(2.21%), 염 회장의 세 딸 염혜영·염혜근·염혜민씨(각각 5.3%), 사위 박희찬씨(0.1%)가 전체 지분의 77.98%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공개매수를 하지 않고도 자진상폐를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분율이 66.7%를 넘기 때문에 교부금 주식교환을 통해 원하는 가격에 소수주주 지분을 강제 매입하고 지분율 95%의 요건을 충족한 뒤 상폐를 신청하면 된다.
업계에서는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신성통상 잔여 지분을 인수하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온다. 2세 승계구도는 이미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염 회장 외아들 염상원씨는 이미 가나안 지분 82.4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가 이미 2세인 염상원씨의 개인 회사인 것이다.
의류 업계 사정에 정통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염 회장은 절대 회사를 팔 사람이 아니다”라며 “상장폐지를 통해 경영권을 매각하려는 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성통상 오너 일가는 재무 쪽에 밝은 타입이 아니어서, 이번 결정이 있기까지 외부 IB 전문가의 자문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신성통상의 비상장사 전환에는 상장사로서의 의무를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신성통상은 지금 당장 유상증자 등을 통해서 자금을 끌어올 필요성도 없는데 굳이 상장사로 남아 공시 의무만 짊어지느니, 차라리 상장폐지해 완전한 가족 회사로 만드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장폐지 비용을 사모펀드(PE) 등 외부 투자자가 부담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들이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비상장사가 된다면 일일이 공시할 의무가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신성통상이 비상장사가 된 후 고배당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신성통상은 지난 2012년 이후 작년까지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작년 말 신성통상의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3157억원에 달했다. 당기순이익이 미처분 이익잉여금에 매년 적립되는데, 매년 700억~800억원 수준의 순이익을 쌓기만 하고 주주환원은 하지 않아 그만큼 배당 재원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염 회장 아들 염상원씨가 대주주인 가나안은 2021년부터 ‘폭탄 배당’을 하고 있다. 2021년 주당 6890원을 배당했는데, 배당성향(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이 무려 49.44%에 달했다. 2022년에는 배당금을 3만4500원으로 대폭 늘렸다. 배당성향은 24.24%였다. 2년간 염상원씨 개인이 손에 쥔 배당금이 약 200억원에 육박한다. 에이션패션도 마찬가지로 고배당을 계속해 왔다. 지난해 배당성향이 49.64%, 재작년 배당성향이 37.28%다. 이를 염태순 회장(지분율 53.3%)과 아들 회사인 가나안(지분율 46.5%)이 독식했다.
신성통상이 이번 자진상폐를 통해 소액주주들을 완전히 축출한다면, 회사는 고액배당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0년 만에 배당을 실시했을 당시 배당성향은 8.6%에 불과했는데, 만약 아들 회사인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의 배당성향(49%)을 따라간다면 배당금은 40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이 경우 염 회장과 세 딸 및 사위에게는 연간 72억원, 아들 염상원씨 회사인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에는 총 240억원이 흘러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3년이 지나면 배당금으로만 공개매수 비용을 모두 메꿀 수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