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던 지난 18일 이후부터 하락세다. 24일 주가는 118달러로 18일 종가 대비 12.92% 급락했다. 월가에선 주가가 10% 넘게 떨어지면 ‘조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24일 2조9000억달러로 18일 대비 4000억달러(약 555조원)가 사라졌다.
엔비디아가 주춤하자 관련주들도 줄줄이 하락했다. 차세대 엔비디아로 주목받으며 다음 ‘시총 1조달러 클럽’이 유력하다던 브로드컴은 같은 기간 11.67% 하락했고, 퀄컴·ARM 등도 모두 두 자릿수 하락세를 보였다. 네덜란드 ASML, 대만 TSMC, SK하이닉스 주가도 하락세다.
최근 엔비디아 주가가 급락할 큰 이슈는 없었다. 굳이 찾자면 “그동안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 유사한 AI 버블 우려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AP통신은 “AI 열풍이 너무 과열돼 주식 시장에 거품이 생겼고, 투자자들이 지나친 기대를 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가 지난주 지분 1억달러어치를 매각하고, 관련 내부자들도 함께 매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너도나도 AI’…닷컴 때와 똑같다?
외신들이 꼽는 현재 AI 장세가 닷컴 버블과 유사한 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AI 언급 빈도다. 컨설팅사 액센추어에 따르면, 기업들 실적보고서에서 AI에 대한 언급은 ‘챗GPT’가 공개된 2022년 말 이후 70% 증가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는 미래 수익에 대해 투자자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데이터 제공 업체 팩트세트도 “직전 분기 S&P 500 기업 중 약 40%가 실적 발표에서 AI를 언급했는데, 이는 5년 전 1%에서 39%포인트 증가한 수치”라고 했다.
두 번째는 닷컴 버블 때와 마찬가지로 소수 기업에 쏠렸다는 것이다. 현재 S&P 500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이 지수의 27%를 차지하는데, 이는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인 18%보다 높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 교수가 창안한 실러 PE 지수도 35.48로 닷컴 버블 때 최고점 44.19(1999년 12월)보다는 낮지만, 전반적으로는 높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주식 시장이 고평가됐다는 걸 뜻한다.
세 번째는 많은 AI 관련 기업들이 기업공개(IPO) 문을 두드리고, 투자자들은 이에 달려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IPO를 통해 모집된 금액은 약 160억달러로, 지난해 전체 200억달러와 비교해 많다. IPO 건수도 올 6월까지 88건으로 지난해 전체(154건)의 절반보다 많다.
◇엔비디아는 기대 아닌 실적…“블랙록, AI 여전히 선호”
그러나 아직은 버블보다는 일시적인 조정이라는 시각이 많은 편이다. 그 이유는 먼저 실적이다. 미국 매체 포브스는 “엔비디아는 2023년 초부터 800% 가까이 급등했고, 다른 기술 기업들도 비슷한 성과를 거뒀다”며 “그러나 이는 기대 심리에만 의존한 것이 아닌 실적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했다. 블루칩데일리트렌드리포트도 “엔비디아의 조정은 꽤 건강한 것”이라며 “기술주에 멋진 휴식기”라고 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관점에서도 2000년대 닷컴 버블이 절정에 달했을 때보다는 무난하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1년 선행 주가수익비율(주가를 주당 순익으로 나눈 비율)은 47배로 나스닥 지수의 29배, S&P 500의 22.6배보다 높다. 하지만 이는 2000년 3월 닷컴 버블 시기의 대표주자였던 시스코의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 미래 수익의 150배가 넘는 배수로 평가됐던 것과 비교하면 낮다는 것이다.
AI 관련 기업 IPO가 많긴 하지만, 이는 2021년과 비교하면 적다. 포브스는 “2021년 IPO 기업은 1035개에 달한다”며 “AI 스타트업 버블이 있었다면 그때가 정점”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로 유지한다”며 “AI 테마를 여전히 선호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