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촌 아파트 거주민들은 주식 투자 실력도 뛰어날까? 실탄이 두둑한 고급 아파트 거주민들은 어떤 종목을 매매해서 돈을 벌고 있을까?
26일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NH투자증권에 의뢰해 전국 30개 부촌 아파트 거주민 2만2000여명의 2년치 주식 투자 현황을 조사해 봤다. KB국민은행이 전국 시가총액 상위 단지를 뽑아 만드는 ‘KB 선도 아파트 지수’ 내 20개 단지와 비슷한 가격대의 10개 랜드마크 단지가 대상이다. 공시가격 164억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PH129(더펜트하우스 청담)에서부터 1970년대에 지어진 한강변 낡은 아파트까지 다양하다.
조사 결과, 이들 30개 고가 아파트 단지가 지난해 거둔 주식 투자 평균 수익률은 국내 20%, 해외 36%로, 일반 개인 고객의 평균 수익률(16%, 31%)을 앞섰다. 작년 한국 증시는 이차전지와 반도체 상승에 힘입어 코스피는 19%, 코스닥지수는 28% 상승했다. 올해 1~5월 기준 고가 아파트의 주식 투자 성적표도 국내 1.3%, 해외 9.7%로, 역시 일반 고객(-2.4%, 6%)보다 높았다.
특히 갤러리아포레, 트리마제,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등 신축 고급 부촌의 주식 투자 성과가 타워팰리스, 압구정 현대 등 전통 부촌에 비해 돋보였다. 또 현금 부자들이 많이 사는 한남더힐, 나인원한남의 작년 주식 투자 성과는 평균에 못 미쳤다.
차정근 NH투자증권 압구정WM센터 부장은 “작년엔 고금리 시기여서 자본이 클수록 채권 투자에 무게 중심을 둔 경우가 많았다”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연 5~6%대까지 높아지는 등 채권 투자 적기였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고 말했다.
✅국내주식, 수익률 1위는 대치 은마
부촌 아파트 30곳에 살고 있는 주식 투자자의 평균 연령은 작년 기준 46세로, 일반 고객(43세)보다 높았다. 50대가 주류인 곳은 많지 않았다. 조사 대상 중에선 압구정 현대(6~7차)가 52세로 평균 연령이 가장 높았고, 용산구 래미안첼리투스, 강남구 타워팰리스와 현대(1~2차), 신현대 등이 50대였다. 참고로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 1400만명 중 40~50대 비중이 45%다(예탁결제원 자료).
국내 주식 부문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거둔 투자의 신(神)은 대치동 은마아파트(23.3%)였다. 은마아파트는 4400여세대가 모여 사는 46년차 대단지로, 교육특구라는 입지 특성상 실제 집주인 실거주 비율이 30%도 안 된다.
차정근 NH투자증권 부장은 “자녀 교육 목적에서 세를 얻어 거주하는 고객들은 장기 투자보다는 중단기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인 매매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예정 아파트는 전세가율이 낮은 편인데, 목돈을 집에 깔고 앉아 살면서 기회 비용을 잃고 싶지 않은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선호한다는 의견도 있다.
2위는 근소한 차이로 성동구 아크로서울포레스트(23%)가 차지했고, 송파구 리센츠와 헬리오시티가 21.6%로 공동 3위였다. 순위에는 들지 않았지만 레이크팰리스, 파크리오, 잠실주공5단지 등 송파구 성과가 전반적으로 좋았다.
정보현 NH투자증권 부동산 수석위원은 “신축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영리치 고객들은 주식 투자도 공격적으로 하는 성향이 강하다”면서 “전통적인 부촌 아파트 고객들도 주식 투자는 잘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부촌 아파트가 보유한 국내 주식 탑5는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카카오, NAVER, 현대차, SK하이닉스였다. ‘잘 모르면 그냥 삼전이나 사라’는 말처럼, 시세 차익과 배당에서 배신하지 않을 종목이라는 믿음 속에 한국 대장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카오와 NAVER는 국민희망주(株)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현재는 평가손실 중인 투자자 비율이 90%가 넘는 국민실망주(株)다.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카카오 목표 주가 평균은 6만8000원, NAVER는 27만원으로, 투자자들의 매입 평균 단가와 괴리가 큰 상황이다.
일반 고객의 보유 종목 1~3위도 삼성전자, 카카오, NAVER로 부촌 아파트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주식을 사고 파는 빈도를 나타내는 매매 회전율은 격차가 컸다. 고급 아파트의 작년 기준 연평균 매매 회전율은 약 87%로, 일반 고객(160.2%)의 절반 수준이었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거래를 활발하게 한다는 의미다.
이재경 NH투자증권 PWM사업부 총괄대표는 “자산가들은 사회적 위치도 있는 데다 여러 금융회사를 거래하기에 다양한 정보를 쉽게 구하고 대응도 빠르다”면서 “단기간에 승부를 내려고 조급해 하지 않고,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여유롭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해외주식, 1위는 청담동 PH129
지난해 해외주식 부문에서 수익률 1위를 차지한 아파트 단지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인 청담동 PH129였다. 장동건·고소영 부부 같은 연예인과 골프선수, 일타강사 등 유명인들이 사는 곳이다.
PH129의 지난해 해외주식 투자 수익률은 51%로, 고급 아파트 30곳 평균(36%)보다도 훨씬 높았다. 보유 상위 종목은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LVMH, 제너럴모터스 등이었다. PH129는 올해도 해외주식 부문에서 금메달이었다. 올해 1~5월 기준 수익률이 27%로, 고급 아파트 평균(9.7%)을 크게 앞섰다. 자산가들은 한 번 주식을 사면 좀처럼 팔지 않는다더니, 올해 보유 종목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너럴모터스만 IBM으로 바뀐 정도다.
2위는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46.9%)였고, 성동구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44.3%로 3위였다. 이 밖에 한남더힐, 압구정 현대(1~2차), 부산엘시티, 잠실주공5단지, 고덕아르테온 등이 해외 주식 투자로 40%대 수익률을 올리며 선전했다.
정보현 NH투자증권 수석위원은 ”여유 자금이 크면 조급함이 덜하기 때문에 가격 조정 기간에 매도하지 않고 지루한 시간을 지나갈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고급 정보를 접하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내리고, 전문가를 곁에 두고서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주식 이민’ 열풍은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 변화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2022년만 해도 부촌 아파트의 해외주식 비중은 전체의 4.7%였는데 작년에 6.8%, 올해 5월엔 7.3%까지 높아졌다. 물론 7.3%도 일반 고객의 해외주식 비중(12.7%)과 비교하면 낮긴 하다.
차정근 NH투자증권 부장은 “자산가들은 양도세를 내야 하는 해외주식보다는 매매 차익이 비과세되는 국내주식을 아직은 선호한다”면서 “하지만 내년에 금융투자소득세(20~25%) 제도가 예정대로 시행되면 국내주식도 세금을 내야 하므로, 국내 주식에 비해 가격 상승 가능성이 높은 해외주식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