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외국인이 K주식을 22조원어치나 샀다고요? 언제 이렇게 많이 산 건가요? 깜놀이네요.”(증권업계 관계자 A씨)

28일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주식의 시가총액 비율이 3년 2개월 만의 최고치인 31.58%를 기록했다. 코스피가 3000선을 뚫었던 지난 2021년 4월(31.59%) 이후 최고치다. 시가총액 비율이 커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많이 매수했다는 의미다.

그래픽=백형선

3년 전 코스피가 3000선을 찍었던 한국 강세장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서서히 한국 기업 주식을 덜어냈던 외국인은 작년부터 부진한 한국 증시에서 보유 주식 수를 늘려가고 있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22조원어치 주식을 사 모았다. 작년 1년 동안의 순매수 금액(13조원)을 크게 뛰어넘는다. 외국인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나타났던 ‘바이코리아’(2009년 32조원, 2010년 23조원) 기록도 바꿀 역대급 매수세를 보이는 중이다. 개인도, 연기금도 다 떠나는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은 왜 나 홀로 매수하는 걸까.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올해 순매수 22조...역대급 바이코리아

올해 외국인이 눈독 들인 한국 증시에선 각종 신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현대차는 28일 장중 29만9500원을 찍으면서 1974년 상장 이후 50년 만에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미국 초대형 운용사인 캐피탈그룹이 지분 5% 이상을 확보하면서 3대 주주에 올랐다. 조선업계 수퍼사이클(초호황기) 진입을 확인해주듯, 싱가포르 국부펀드(GIC Private Limited)는 28일 삼성중공업 지분 5%를 사들였다고 공시했다.

외국인의 왕성한 매수세에 대해 여의도 증권가는 크게 3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반도체·자동차·화장품·조선 등 주요 업종의 수출 회복세 속에 예상되는 실적 개선이다.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276개 상장사의 영업이익 추정치는 255조원으로 연초 추정 대비 2.4% 증가했다. 미국·유럽 등 다른 주식 시장은 인공지능(AI) 붐으로 주가가 올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상태라는 의견도 있다.

둘째, 달러당 1400원에 육박하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이후 외국인은 원화 환율이 1300원 이상일 때 순매수세를 보여 왔다. 외국인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한국 주식을 사는데, 1300원대에서 한국 돈으로 주식을 샀다가 향후 원화 강세가 되었을 때 달러로 바꾸면 환(換)차익을 챙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 중인 밸류업(기업 가치 상승) 효과다. 심효섭 KB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앞서 밸류업을 추진했던 일본 증시에서 주가 상승 효과를 학습한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이후 외국인은 환율이 1300원 이상일 때는 주식 순매수를 유지해 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바이코리아 시기엔 대형주(株) 주목”

올해 코스피 대형주 거래 대금의 32%는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외국인은 개인과 기관이 내던진 삼성전자 주식을 8조원 넘게 사 모았고, SK하이닉스·현대차·삼성물산·HD현대일렉트릭·기아 등을 전부 1조원 이상 순매수했다. 신승진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개인·기관이 매도한 물량을 사실상 외국인이 모두 받아냈다”면서 “외인은 글로벌 기업과 견줘도 경쟁 우위가 있는 IT·자동차 같은 회사들을 집중적으로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올해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특성을 고려하면, 외국인의 ‘바이코리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올해 외국인 수급은 미국 중심인데, 연기금·운용사 등의 자금 위주로 장기 투자를 선호한다”면서 “과거 미국발 자금 매수가 많았을 땐 대형주가 중소형주 대비 양호한 흐름을 보였던 만큼, 대형주 강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