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최근 2개월간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10조원 넘게 늘었다.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이 9월로 연기되면서 ‘대출 막차를 타자’는 수요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부동산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금융 당국은 “시장의 과열 분위기에 편승해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지 말라”며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에 개입하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서 계속 줄어들다가 지난 4월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 3조4000억원 늘어났던 은행권 가계대출은 2월에 1조9000억원으로 증가 폭을 줄인 뒤 3월에는 1조7000억원 감소했다. 그러나 4월 들어 은행권 가계대출은 5조1000억원 늘어나더니 5월에는 6조원까지 늘어났다.

6월에도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이달 2일 발표한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액은 5조3415억원이었다. 인터넷은행과 지방은행, 외국계은행 등을 합치면 증가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나자 전날 은행을 소집해 가계대출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금감원은 “가계대출의 선제적 관리를 위해 각 은행에 경영목표 범위 내에서 가계대출이 취급되도록 철저히 관리하라”고 은행권에 요청했다. 주요 은행은 올해 가계대출(정책대출 제외) 목표증가율을 연간 2~3% 수준으로 설정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오는 15일부터 현장점검을 통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준수 여부와 가계대출 관리 실태 등을 확인하고 문제가 적발되면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다.

그래픽=손민균

결국 은행권은 금리 인상 등을 추진하며 가계대출 공급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가계 부동산담보대출 가산금리를 0.13%포인트 인상했다. 하나은행 역시 가계 주택담보대출 감면 금리 폭을 최대 0.20%포인트 축소했다. 다른 은행 또한 조만간 금리 인상 등의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가계대출을 관리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수단이 금리 인상이다”라며 “대출 총량 규제까지는 어렵고 당분간 금리를 조금 올리며 대출심사를 꼼꼼히 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를 두고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의 책임을 은행권에만 미루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당국은 이번 가계대출의 증가세를 금리 인하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분석하면서 “은행권은 최근의 일부 과열 분위기에 편승해 무리하게 대출을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은행을 겨냥했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자극한 또 다른 요인을 살펴보면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 대출의 확대 등 정부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5월 국내 은행의 주담대 증가액 가운데 디딤돌·버팀목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6.7%에 달한다. 신생아 특례대출도 올해 1월 말 출시 이후 5개월 만에 6조원의 신청이 몰렸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대출을 막을 수 없는 상품들로, 정부가 공급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픽=정서희

스트레스 DSR 제도의 2단계 시행이 두 달 미뤄진 점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자극한 원인으로 꼽힌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의 금리 변동 위험을 미리 금리에 반영해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제도다. 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적용되는 금리가 높아지는 만큼 대출 한도는 줄어들게 된다. 금융 당국은 소상공인의 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스트레스 DSR 제도 2단계 시행을 기존 7월에서 9월로 연기했다. 시장에서는 대출 규제의 시행이 뒤로 밀리면서 대출 한도가 줄기 전 대출을 미리 받아두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리 하락 기대와 주택가격 상승 예상 등이 가계대출을 증가한 측면도 있지만, 정책 모기지 공급 속도를 줄인다든지, 대출 규제를 계획대로 시행하는 등의 정부 차원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