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4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VCC) 센트럴홀과 웨스트홀 사이 외벽에 두산그룹 광고가 게재돼 있다. /두산 제공

불과 3년 전만 해도 경영난에 허덕이던 두산그룹(이하 두산)이 최근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중공업 중심의 ‘굴뚝기업’에서 반도체·이차전지·로봇·신재생에너지·SMR(소형원자로모듈) 등 미래지향 산업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면서 시장에서 바라보는 눈높이가 달라졌다.

두산 계열사들이 발행하는 회사채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주사인 두산의 신용등급은 BBB급이지만, 시장 금리만큼은 A+로 인정받았다. 자금이 필요한 두산 계열사들은 ‘A급 같은 BBB급’으로 통하며 러브콜을 받고 있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전날 두산퓨얼셀(BBB)은 최대 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모집 금액을 훌쩍 넘는 수요를 확인했다. 1년 6개월물(150억원), 2년물(250억원)로 나눠 모집했는데 각각 500억원, 1950억원의 자금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민간채권 평가회사의 평균금리(민평금리) 기준 ±30bp(1bp=0.01%포인트)의 금리를 제시했는데, 1년 6개월물은 -75bp, 2년물은 -86bp 수준에서 모집 물량을 채웠다. 시장이 평가한 두산퓨얼셀 채권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려는 투자자가 많았다는 의미다.

수요가 몰린 만큼 두산퓨얼셀은 1년 6개월물 330억원, 2년물은 470억원으로 증액해 총 800억원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두산퓨얼셀 민평금리와 비교하면, 이번 회사채 발행금리는 4%대 중반 수준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인 두산(BBB)도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1년 6개월물(200억원), 2년물(200억원) 모집에 총 253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1년 6개월물과 2년물은 각각 -95bp, -90bp 등 밴드 하단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모집 물량을 채웠다.

이번 회사채 발행 직전 두산의 신용등급이 BBB에서 BBB+로 올라간 점도 흥행 성공 요소가 됐다. 지난 19일 한국신용평가가 먼저 두산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아직 다른 신용평가사는 등급을 조정하지 않아 신용등급 스플릿(신용평가사 간 등급 불일치) 상태지만, 다른 곳들도 따라서 상향할 가능성이 크다.

두산 계열사의 신용등급은 BBB급이지만, 발행 금리로 보면 사실상 A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두산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이다. 지난 2020년 두산은 자금난 때문에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갔고, 2022년 2월에서야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졸업했다. 당시 두산그룹 전체의 금융부채는 약 18조4808억원(부채비율 327.7%)이었다. 자산 매각, 유상증자, 비용 절감 등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구조조정 모범생’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엔 웃돈을 주더라도 두산 계열사 회사채를 확보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고 한다. 특히 BBB급 회사채를 담아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을 노리는 하이일드 펀드들이 두산 계열사가 발행하는 회사채를 노리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언이다. 유사한 처지에 놓여 있던 대한항공 신용등급이 BBB에서 A로 올라가면서 안정적인 BBB급 채권으로 두산이 대한항공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풍부한 수요를 확인했기에 다른 계열사들도 자금 조달을 준비하고 있다. 두산테스나, 두산로보틱스 등이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증권사들과 접촉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테스나는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분야 국내 1위 기업인 테스나가 두산에 인수돼 새로 붙여진 이름이다. 두산로보틱스는 협동 로봇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곳이며, 지난해 10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