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이달 도입 1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가입자의 90%는 은행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이란, 확정기여(DC)형·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퇴직연금 사업자가 사전에 약속한 방식대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는 527만명이다. 지난해 말 479만명에서 48만명 늘었다.

증권업계는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매년 수십조 원씩 불어나는 퇴직연금 시장의 자금 흐름 일부를 실적 배당형(원리금 비보장) 상품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디폴트옵션 가입자 10명 중 9명은 은행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증권업계 관계자는 “거의 모든 직장인이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생활비로 쓸 노후 자금을 절대로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퇴직연금 운용 관련 기본 설정을 할 때도 은행 예금, 보험사 이율보증보험계약(GIC) 등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높은 수익률보다 노후 생활비를 잃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상품 선택의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제도 시행 당시 금리가 높았던 점도 원금 보장 상품 쏠림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성 제고’라는 제도 취지에 맞춰 디폴트옵션을 미국·영국 등 금융 선진국처럼 실적 배당형 상품 중심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운용사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에서 초저위험 상품이 1년간 4%대 수익을 냈는데, 같은 기간 중위험(10.91%)과 고위험(14.22%) 등급 수익률은 2~3배 더 좋았다”며 “하반기 중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초저위험 상품과 그 외 상품 간) 수익률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