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좀비 정찬성. /ZFN

“제가 개최한 이 대회를 저는 제 유튜브로 생중계 할 수가 없어요. ‘파이트 패스’와 계약돼 있기 때문이지요.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파이트 패스와 계약한 건, 후배들이 세계 무대를 꿈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에요. 그 문을 제가 열어주고 싶은 거죠.”

한국 격투기의 전설, 코리아 좀비 정찬성(37)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한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링 밖의 그는 조금 수줍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29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 오늘 그는 은퇴 후 첫 사업인 ‘ZFN(Z-Fight Night)’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는 날입니다.

ZFN을 ‘사업’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그가 수익을 얻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개최하지만, 경기 당일 자신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 생중계를 할 수 없습니다. 경기는 오직 공식 계약된 UFC 공식 앱의 ‘파이트 패스’를 통해서만 생중계가 가능합니다.

아직 종합격투기 문화도 낯선 한국에서 ‘파이트 패스’ 앱을 깔아가며 볼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그는 “이건 후배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가 꿈꾸는 한국 종합격투기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열번째 이야기는 ‘코리아 좀비’ 입니다.

◇코리아 좀비 사업 구조

소속업무특징
AOMG연예계 관련 업무나 정찬성의 에이전트를 담당해주는 곳CJ ENM 산하 힙합 레이블
코리아 좀비 MMA정찬성이 관장으로 운영하는 MMA 체육관
ZFN정찬성이 기획하고 개최하는 MMA 대회UFC 파이트 패스와 계약
도시 맥주정찬성이 운영하는 맥주 프랜차이즈
라이크 플레이정찬성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곳좀비 트립

◇은퇴한 전설의 첫 사업

정찬성. /ZFN

“정찬성에게 격투기를 빼면 아무 것도 없다. 격투기로 이루어진 남자가 리그를 운영할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

그는 이날 자신감 넘치는 소감으로 전체 오프닝을 열었습니다.

ZFN은 정찬성 은퇴 후 첫 프로젝트라는 말에 일찌감치 티켓들이 매진됐습니다. 오랜 친구 박재범을 비롯해 타이거JK, 윤미래 부부, 사이먼 도미닉, 지코, 코드 쿤스트 등 힙합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배우 유지태, 안보현, 장기용, 방송인 기안84, 덱스, 한혜진 등 각 분야 인사들도 자리했습니다. 문화와 스포츠의 교류, ‘ZFN’이 지향하는 격투기의 대중화입니다.

이날 경기는 인기 웹콘텐츠 ‘좀비트립’에서 검증된 아마추어 선수들의 대회 Z-Royal, 아마추어 신예 선수 발굴을 위한 대회 Z-Amateur, 종합격투기 프로 선수들의 대회 Z-Nation, ZFN의 메인 넘버링 대회 ZFN Numbered Event 등 총 4개 부문의 대회로 진행됐습니다. ‘좀비트립’의 인기 덕분인지 아마추어 경기도 관중의 뜨거운 호응이 펼쳐졌습니다.

한국 유주상 선수와 브라질 헤이날도 엑손 선수. /ZFN

프로 대회에서는 국내 최고 스타들인 Road to UFC 출신 김한슬(34) 김상욱(31) 박재현(23)과, 아마추어 포함 2017년부터 9연승을 달리고 있는 유주상(30) 등의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정찬성은 이들 넷에게 모두 외국인 상대를 붙여줬습니다. UFC 파이트 패스 생중계 대회에서 상대를 꺾으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강자들입니다. 이날 김상욱과 경기를 펼친 일본 사사키 신지 선수는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후배들이 세계로 가는 길, 내가 열어주겠다”

정찬성은 경기 전부터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평소 종합격투기 대회를 안 다녀본 사람도 재미있는 대회로 만들고 싶었어요.”

ZFN 행사장. /ZFN

그의 말대로 이날 행사장은 음향, 조명이 완벽해 들어온 것만으로도 설렜습니다. 데이트 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가본 행사장 중 가장 남성들의 응원 소리가 크기도 했습니다. 멋진 남자들도 많았습니다.

정찬성은 이 경기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습니다. 유튜브에서 발품 팔아 PPL(간접 광고)을 가져온 것도 이 대회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이 대회로 얻을 수 있는 수익원이 많지 않습니다. UFC 파이트 패스와 계약했기 때문입니다.

“파이트 패스와 계약했다는 것은 ZFN 대회가 친선 경기가 아닌 전적이 쌓이는 공식 경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UFC에 ‘이 선수를 경기에 올려 달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제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선수들이 큰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왕 싸우기로 마음 먹었으면, 세계 무대에서 싸워보고, 코너 맥그리거도 돼 봐야죠. 선수들이 본인의 가능성을 국내로 한정하지 말고, 세계 무대를 꿈꿨으면 좋겠어요. 그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200여 국가에서 접속할 수 있는 OTT 서비스 ‘UFC 파이트 패스’로 생중계되는 한국 종합격투기 단체 대회는 ZFN이 최초입니다. 그가 만든 ZFN은 알파벳의 마지막 철자인 ‘Z’처럼 대한민국 종합격투기의 마지막 리그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종합격투기 시장의 발전을 위해 기획된 것입니다. “ZFN의 ‘Z’는 절대 좀비(ZOMBIE)의 ‘Z’가 아니다”고 강조하더라고요.

정찬성은 한국인 최초로 UFC에서 타이틀 매치를 치른 선수입니다. 2007년 6월 ‘슈퍼삼보페스티벌’로 데뷔해 그해 12월 ‘판크라스 한국대회’, 2008년 ‘횡성 한우배’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전적을 쌓았습니다. 그가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8년 일본에서 베테랑 파이터인 오미가와 미치히로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면서부터입니다. 그 때부터 정찬성은 세계 무대를 한 걸음씩 뚜벅 뚜벅 걸어 올라갔습니다.

정찬성은 지난해 8월 전 페더급(-66㎏) 챔피언 맥스 홀러웨이(33·미국)와 치른 UFC on ESPN+ 83 메인이벤트로 17년 파이터 경력을 마무리했습니다. 2013·2022년 UFC 페더급 타이틀매치로 국내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2012년 이후 UFC 10회 연속 메인이벤트 경기 역시 한국 종합격투기선수가 다시 세우기 힘든 업적입니다. 그가 파이트 패스와 계약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찬성은 “ZFN이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는 UFC 진출을 통해 국내 파이터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찬성 경기를 홍보하는 데이나 화이트 회장. /인스타그램

이런 그의 마음이 전달됐는지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대회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UFC 공식 유튜브 계정에 “당신이 놓치지 말아야 할 종합격투기(MMA) 이벤트가 있다”며 “코리안 좀비의 ZFN을 UFC Fight Pass를 통해 라이브로 확인하세요”라는 글과 함께 홍보영상을 게재했습니다.

◇코리아 좀비, 돌아오나?

모든 경기가 마무리된 이후, 관계자들은 “마지막 영상이 포인트”라고 했습니다. 쿠키 영상처럼 시작된 깜짝 VCR. 갑자기 등장한 정찬성 선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근데 뭐 UFC 들어가야 되나 다시? 당연히 뛸 생각도 있고. 이 무대가 진짜 멋있으면 나도 뛰는 거지.”

‘AGAIN, KOREAN ZOMBIE.’ 그는 다시 돌아오는 걸까요? 일단 ‘ZFN’은 현재 두 번째 대회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UFC FIGHT PASS와의 협업에 이어 AFC(Angel’s Fighting Championship)와의 MOU 체결을 통해 국내의 탑컨텐더 선수들과 함께 대회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 같은 ‘격알못(종합격투기를 모르는 사람)’도 챙겨보게하는 것이 코리아 좀비의 힘이겠지요? 전설의 길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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