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230조원 규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에 대한 금융권의 사업성 평가가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다. 금융권에선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저축은행업계가 PF 옥석가리기 과정에서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지난달 13일부터 부동산 PF 사업장을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해 사업성을 재평가한 뒤 이를 지난 5일 금융 당국에 제출했다. 금융사들은 ‘유의·부실우려’로 평가받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달 말까지 재구조화 계획을 금융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 당국은 ‘유의’ 등급 사업장은 재구조화 및 자율매각을 추진하고, 사실상 사업 진행이 어려운 ‘부실우려’ 사업장은 상각이나 경·공매를 통한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부실우려 평가를 받은 사업장에 대출을 해준 금융사는 대출금의 75%까지 대손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금융 당국은 PF 사업장 구조조정으로 전 금융권에 부실이 확산될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적자에 허덕이는 저축은행업계는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온다.

업계에서는 PF 사업장 재구조화에 따른 저축은행의 추가 손실 비용이 이미 적립된 충당금 규모를 크게 웃돌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NICE신용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저축은행업계에서 2조6000억~4조8000억원의 PF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중소형 저축은행이 이런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79개 전체 저축은행은 지난해 연간 기준 555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엔 1543억원의 손실을 보였다. 저축은행업계는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연간 손실 규모와 비슷한 수준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PF 구조조정으로 충당금을 적립할 경우 대규모 추가 손실이 불가피하다.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은 이런 적자 누적을 버텨낼 체력이 부족하다.

일러스트=손민균

구조조정 대상 PF 사업장도 금융 당국이 추산한 것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 5월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 규모가 전체의 5∼10%, 경·공매가 필요한 사업장은 약 2∼3%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말 연체율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올해 6월까지 PF 대출 연체율이 증가하면서 구조조정 대상 사업장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12월 말 기준으로 추산했는데 그사이 연체율이 상승한 만큼, 경·공매 물량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저축은행의 구조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에 저축은행업계는 한국은행의 공개시장 운영 대상 기관 선정을 신청했다. 공개시장 운영 대상 기관에 포함되면 위기가 발생하면 한은이 일시적 유동성 부족분을 지원한다.

김수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부동산 PF 흐름이 저축은행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마무리된 금융위기 전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부실 PF 사업장 정리를 미룰 경우 저축은행 구조조정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