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사이언스에 대한 지배력이 결국 창업주의 고향 후배 손에 넘어갔다. 송영숙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 경영인 체제를 갖추겠다고 밝히면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동국 중심으로’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10일 신 회장은 임종윤·임종훈 형제까지 품기로 하며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종식됐음을 선언했는데, 이로써 그를 구심점으로 한 체제 재편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리게 됐다.
신 회장은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단순한 ‘고향 선후배’를 넘어선 끈끈한 관계였다. 그는 고향인 김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회사 한양정밀을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올려놓은 뒤 김포로 이전했을 정도다. 신 회장은 김포에서는 알아주는 지역 유지이자 거물급 인사로, 자기 회사에서 한 번에 10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뽑아 쓸 만큼 재력도 상당하다. 지금도 4개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혼자 틀어쥐고 있어 막강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신동국·신유섭 두 사람이 지분 전량 보유한 ‘한양정밀 그룹’
1950년생인 신 회장은 서른두 살에 서울에서 한양정밀을 창업했지만 김포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각계에 있는 김포 출신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했는데, 임성기 회장과의 인연도 그때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김포 통진읍 가현리 출신이며, 통진고등학교(옛 통진종합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신 회장은 임 회장이 만든 김포 출신 애향 단체 ‘금청회’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다. 금청회는 기업인뿐 아니라 국회의원, 판검사 등 정재계 및 법조계 인사들까지 두루 포함된 모임이다.
신 회장이 과거 임성기 회장을 도와 동신제약 인수를 지원하고 한미약품·한미사이언스에 일찌감치 투자해 주식 부자가 됐다는 얘기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만, 한양정밀을 키워온 과정은 별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연 매출 800억원대의 중견기업이자 비상장사인 만큼, 알려진 내용도 많지 않을뿐더러 대중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설립 초기 한양정밀은 신 회장만의 회사가 아니었다. 신 회장(49.1%)과 박찬협(36.3%) 전 이사, 강갑부(14.6%) 전 이사가 지분을 나눠서 들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신 회장이 동업자들의 지분을 전부 사들이며 100% 주주가 됐다. 같은 해 그는 보유 중이던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10여 차례에 걸쳐 장내매도해 약 10억원을 현금화하기도 했는데, 이 매각 대금을 보태 공동 창업자들의 지분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신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판 건 이때와 2015년(약 53억어치 매도) 뿐이다.
한양정밀에는 한양에스앤씨, 에이치앤디, 가현 등 비상장 관계사들이 있는데, 전부 신 회장과 아들인 신유섭 한양정밀 사장이 지분 전량을 쥐고 있는 구조다. 한양에스앤씨는 한양정밀에서 인적분할된 회사인데, 신 회장이 2011년 동업자들의 지분을 전부 사들였다. 1986년 설립된 중장비 부품 제조사 가현(옛 동우기계공업)의 경우 신 회장과 동업자들이 2003년까지 지분을 나눠 들고 있었지만, 이후 신 회장과 신유섭 사장이 71.49%, 28.51%씩 보유한 회사가 됐다. 에이치앤디 역시 신 회장과 신 사장이 지분을 나눠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부 자본 없이 대주주가 4개 비상장사의 지분을 전부 틀어쥐고 있는 구조다.
신 회장과 함께 한양정밀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신유섭 사장은 1979년생으로, 신 회장이 서울 강남에 거주할 당시 반포고를 졸업했다. 이후 HD현대인프라코어(옛 두산인프라코어)에 다녔는데, 이 회사는 한양정밀의 오랜 고객사다.
신 사장은 2007년 가현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이듬해에는 에이치앤디 이사로도 취임했고, 한양정밀에는 2019년에야 사내이사로 합류했다. 신 회장과 함께 공동대표가 된 건 2022년에 들어서였다.
◇ 2020년 배당금 1130억원 한 번에 빼 가기도
신 회장의 정확한 ‘재력’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이번에 1644억원을 들여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모녀의 보유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는데, 인수 대금을 어떻게 동원할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업계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보유 중인 한미사이언스 및 한미약품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현재 신 회장이 보유한 두 회사 주식의 시장 가격은 약 56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신 회장 입장에서 현금을 더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신이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는 한양정밀 주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 회장은 과거 한양정밀에서 배당을 통해 일시에 천억원대 현금을 뽑아 쓰기도 했다. 2020년 총 1130억원의 배당금을 받아 간 것이다. 주주가 신 회장 한명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해 한양정밀은 단기금융자산 973억원어치를 모두 팔기도 했는데, 신 회장에 대한 배당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양정밀은 그 이후 계속 배당을 하지 않고 작년 말 기준으로 약 1300억원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 있어 신 회장이 또 언제든 이 같은 폭탄 배당을 통해 현금을 대거 끌어다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한양에스앤씨에도 334억원, 가현에도 155억원의 미처분이익잉여금이 쌓여있는 상태다.
신 회장은 과거 2015년 한미약품 주식을 장내매도해 334억원을 챙긴 적이 있다. 그리고 이듬해 고급 아파트 한남더힐을 분양받았는데, 91평형짜리 집 매매대금 65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