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로고

“알짜 기업인 가치주를 상장 폐지시키고, 적자 기업인 테마주에 몰아주면서 밸류업(가치 제고)을 한다고?”

“기업들 이러는 것 때문에 상법 개정한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두산 간도 크다. 이런 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두산그룹이 지난 11일 발표한 지배 구조 개편안으로 투자자들이 폭발했다. 두산은 전날 두산 밥캣을 상장 폐지시키고, 두산로보틱스에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적자 기업에서 한 순간에 캐시카우(현금창출) 두산밥캣을 먹게 된 두산로보틱스 주가는 12일 오전 전일 대비 21.57% 오르며 10만3700원에 거래 중이다. 반면, 알짜 기업에서 아무 잘못 없이 한 순간에 상장 폐지의 운명에 처한 두산밥캣의 주가는 전일 대비 4% 하락한 4만원대까지 내려갔다가 현재 단타(짧은 시간 매수 매도)족들이 붙으면서 반등했다. 두산밥캣을 갖고 있다가 하루 아침에 빼앗기게 된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도 전일 대비 4.12% 하락한 2만950원에 거래 중이다. 오전 한때 8% 넘게 하락하며 2만원선이 깨지기도 했다.

두산이 11일 발표한 사업안의 핵심은 두산그룹의 밥캣 지배력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두산->두산에너빌리티->두산밥캣으로 이어지던 지배구조를 두산->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 구조로 변경하는 것이다.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가 46%를 들고 있고,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모회사)이 68%를 들고 있다. 두산 입장에서는 두산로보틱스로 기업을 합치는 것이 지분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편하다.

그러나 두산밥캣은 지난해 기준 매출 9조7000억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의 알짜기업이다. 두산로보틱스는 매출 530억원에 영업이익은 -192억원이다. 그런데 시가총액은 두산로보틱스가 더 높다. 두산로보틱스 투자자는 단타를 노린 테마로 들어가고, 두산밥캣은 가치 투자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은 두산밥캣 같은 기업의 주가를 올리자는 것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상장 폐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이러지 말라고 상법 개정에 ‘이사 충실 의무’를 넣으려다가 재계 반대로 주춤한 상황인데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수 있느냐?”며 황당하다고 말했다.

가장 황당한 것은 두산밥캣 투자자들이다. 두산밥캣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인 5만459원에 주식을 팔거나, 두산로보틱스보다 적은 비중으로 주가를 교환해야 한다. 52주 내 두산밥캣의 최고가는 6만5600원이었다. 두산로보틱스 주가를 갖기 싫다면 손해를 보고라도 팔아야 하는 선택을 강요 당한 것이다. 만약, 두산밥캣의 주식 교환하고 싶다면, 두산밥캣 100주 당 두산로보틱스 주식 약 63주를 받게 된다.매수청구기간은 오는 9월25일부터 10월15일까지다. 한 두산밥캣 투자자는 “이익은 높지만, 시총은 낮고, 현금 보유량도 많아 밸류가 올라갈 줄 알고 장기 투자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이건 두산밥캣이 가진 현금 주주들 나눠주기 싫다고 대주주가 다 가져간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두산그룹의 이번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매수청구권이 과도하게 행사되지 않아야 한다”며 “두산밥캣은 안정적인 실적과 배당에 이끌린 투자자가 많은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성장성을 보고 유입된 투자자가 많은 만큼 기존 두산밥캣 주주 모두가 이번 주식교환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