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두산타워

두산그룹의 지배 구조 개편에 12일 계열사 주가의 희비가 엇갈렸다.

캐시카우(현금 창출) 역할을 하는 두산밥캣을 합병하기로 한 두산로보틱스(이하 로보틱스) 주가는 약 24% 폭등한 10만5700원으로 마감했다. 반면 자회사인 두산밥캣(이하 밥캣)과 결별하는 두산에너빌리티(이하 에너빌리티)는 장 초반 8% 넘게 하락하다 낙폭을 점차 줄여 약 4% 하락한 2만900원으로 마감했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인 밥캣은 상장 폐지 소식에 장 초반 4% 넘게 하락했지만, 오후부터 반등하며 전날보다 5% 상승한 5만4600원으로 마감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밥캣 주식 1주는 로보틱스 0.63주로 바뀌는데, 로보틱스 주가가 오르면서 0.63주의 가치가 현재 밥캣 주가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로보틱스와 밥캣의 급등에 힘입어 두산그룹의 시가총액은 전날보다 1.91% 늘어난 31조5693억원을 기록했다. 여의도에서는 “에너빌리티 주가가 떨어지긴 했지만 밥캣과 로보틱스가 크게 오른 것을 감안하면 이번 개편안에 대해 주식시장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주)두산의 경우 로보틱스로부터 받는 배당이 증가하면서 개별 현금 흐름이 개선되고, 이에 따라 자사주 18%를 밸류업 정책(기업 가치 제고)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판단했다.

◇두산그룹 3대 축으로 지배 구조 개편

두산그룹은 전날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 소재 등 3대 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을 집중하는 지배 구조 개편안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클린에너지를 담당하는 기업은 에너빌리티로, 앞으로 원전 사업 등을 이끈다.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밥캣은 인적 분할을 거쳐 로보틱스와 합병한 뒤 스마트 머신 부문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밥캣은 상장 폐지되고,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들어간다. 현재 밥캣 지분은 에너빌리티가 46%, 로보틱스 지분은 ㈜두산이 68%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이 로보틱스를 통해 밥캣을 보유할 경우, 그룹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는 측면도 있다. 두산 관계자는 “소형 건설기계와 협동 로봇 시장의 사업적 결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첨단 소재 부문은 기존대로 두산테스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산 관계자는 “업종 구분 없이 혼재된 사업들을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모은 것이 이번 사업 재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에너빌리티와 밥캣, 로보틱스 등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분할과 합병, 포괄적 주식 교환 등을 결정했다.

그래픽=백형선

◇”흑자 기업이 적자 기업 안으로… 밸류업에 역행”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안이 밥캣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가총액 측면에서는 로보틱스가 6조8515억원으로 밥캣(5조4736억원)보다 크다. 하지만 실적은 정반대다. 밥캣은 지난해 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3000억원을 넘지만, 로보틱스는 매출 530억원에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밥캣 기존 주주들은 합병에 찬성할 경우 주식 1주당 로보틱스 주식 0.63주를 받는다. 반면 반대할 경우 주당 5만459원에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밥캣이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오래 보유하려던 주식 투자자들이 합병 찬성이냐 반대 매각이냐의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이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법의 상장 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며 “두산은 밸류업에 얼음물을 끼얹고 있다. 이것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이번 재편은 계열사의 밸류업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두산 관계자는 “밥캣은 현재 실적은 좋지만 미래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는 로보틱스 사업이 추가될 경우 두 회사 간의 시너지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밥캣은 로봇 산업에 진출해 기존 제품의 기술 혁신 가속화 및 신성장 동력 발굴을 추진하고, 로보틱스는 선진 시장 고객 접점 확대와 전문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