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A씨는 지난 2022년 5월 경기 수원시의 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추돌 사고를 당한 뒤 2년 넘게 한방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가 큰 것은 아니었다. 앞에 가던 차가 후진을 하다가 A씨 차의 앞 범퍼와 부딪친 것이다. A씨의 차를 고치는 데는 35만원가량의 수리비가 나왔다.
현행법에서는 척추 염좌(삔 것), 단순 타박상 등 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상해를 12~14급으로 분류하고, 이 등급을 받은 환자들은 가볍게 다쳤다고 해서, 경상(輕傷) 환자로 불린다. A씨는 무릎 염좌 등 상해 12급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A씨는 사고 다음 날부터 올해까지 70회 넘게 병원 치료를 받았다. 상대방 보험사가 그동안 A씨에게 지급한 치료비는 총 754만원에 달한다. 치료비를 항목별로 보면, 부항술 등 기타 항목에 325만원, 한방 물리요법에 114만원, 약침에 118만원 등이었다.
이런 자동차보험 환자의 과잉 진료 문제는 실손보험 누수 문제와 함께 손해보험사들의 양대 골칫거리로 통한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타박상 등 가벼운 증상에도 일단 뒷목부터 잡고 병원을 가는 이른바 ‘나이롱환자’(가짜 환자)’ 문제다.
◇경상 환자 치료비, 한방이 양방의 3배
지난해 경상 환자의 과잉 진료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자동차보험 종합 개선 방안’ 시행 이후 주춤했던 나이롱환자 치료비가 올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본지가 삼성·현대·KB·DB 등 4대 손해보험사로부터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자동차보험 경상 환자의 1인당 치료비는 91만2000원으로 지난해(88만1000원)보다 3.5% 늘었다. 경상 환자 1인당 치료비는 2022년 89만원에서 지난해 소폭 감소했다가 1년 만에 다시 늘어난 것이다.
치료비 증가를 주도한 것은 한방병원이었다. 올해 1분기 한방의 경상 환자 1인당 치료비는 106만8000원으로, 지난해(100만6000원)보다 6%가량 늘었다. 정부의 개선 방안 시행 이전인 2022년 치료비(101만6000원)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반면 양방의 경상 환자 1인당 치료비는 2022년 34만4000원에서 2023년 33만6000원으로 줄었다가 올해 1분기 34만5000원으로 늘었지만, 2022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방 치료비가 급증하면서 한방과 양방 치료비 격차는 3배를 넘었다. 한방으로 치료받은 인원은 23만5163명으로 양방 치료 인원(19만3979명)의 1.2배에 불과했지만, 총 치료비는 한방(2512억원)이 양방(669억원)의 3.8배에 달하면서 1인당 치료비에서 큰 차이가 난 것이다.
◇규제 피하는 꼼수 치료 부활
정부는 나이롱환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했다. 경상 환자의 치료비 중 본인 과실에 해당하는 부분은 본인 보험이나 자비로 처리하게끔 하고, 경상 환자가 4주를 초과하는 장기 치료를 받을 시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반짝했던 제도 개선 효과는 올 들어 사라졌다. 보험업계에서는 “올해 들어 다시 일부 병의원의 ‘꼼수 치료’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던 병의원들이 올 들어 경상 환자에 대해 추가 진단서를 반복해 발급하는 식으로 개선된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에 의존하는 일부 한방 의료기관의 문제는 곧 무고한 다른 운전자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상 환자에 대해 의학적·임상적 근거 없이 두세 가지 이상의 고액 비급여 한방 치료를 한꺼번에 시행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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