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트럼프 대세론’에 한국 주식시장이 울고 웃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사건 이후 오는 11월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도체 종목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주가가 하락했다. 특히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TSMC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SK하이닉스의 하락폭이 컸다. SK하이닉스는 전날보다 5.36%(1만2500원) 내린 22만500원에 거래를 마무리했다. 지난달 12일 이후 종가 기준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대만이 방어를 위해 우리에게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만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고, 엄청나게 부유하다”고 말한 것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극했다.

외국인은 이날 SK하이닉스 주식 407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는데, 최근 1년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밤사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주 하락과 맞물려 외국인이 매도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같은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비판하면서 국내 이차전지 종목에도 불똥이 튀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를 폐기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지 않았으나, 보조금이 과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IRA 보조금이 없으면 당장 적자로 전환하거나 적자폭이 더 커질 수 있는 이차전지 업황을 고려할 때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 POSCO홀딩스, 삼성SDI, LG화학, 포스코퓨처엠 등이 약세를 보였다. 코스닥시장에서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 엔켐도 전날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이 거래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악재만 던진 것은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요 기업들의 주가를 토대로 구성하는 KRX 지수 가운데 ‘KRX 건설’이 이날 가장 높은 상승률(3.06%)을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리이나 전쟁 조기 종식을 주장하고 있어, 재건 사업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밖에 실적 전망이 밝은 조선주도 강세였다. STX중공업과 삼성중공업, HD현대중공업 등이 최근 1년 내 최고가를 경신했다.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화장품주도 상반기 최대 수출 규모(48억달러) 발표에 힘입어 주가가 반등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표기돼 있다. /뉴스1

다만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 부진한 영향에 코스피·코스닥지수 모두 약세를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8포인트(0.80%) 하락한 2843.29로 장을 마감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2614억원 ‘팔자’에 나섰다. 기관과 개인이 각각 1354억원, 1133억원 순매수했다.

코스닥지수는 10.2포인트(1.21%) 내린 829.41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시장에서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639억원, 271억원을 순매도했다. 개인만 818억원 매수 우위를 보였다.

당분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에 따라 주식시장이 움직이는 ‘트럼프 트레이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도 반대하면서 오는 9월 시장이 기대하는 대로 피봇(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