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저항선이라고 여겨졌던 ‘1달러=160엔’을 뚫으며 1986년 이후 38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던 엔화 가치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를 팔고 엔을 사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엔화 가치 하락세가 멈춘 것이다. 지난 19일 외환시장에서 엔화값은 달러당 157엔까지 오르면서 한 달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100엔당 851원대까지 떨어졌던 원·엔 환율도 이날 883원대까지 올라섰다.
엔저 흐름에 제동이 걸린 것은, 미국 유력 대선 후보인 트럼프의 발언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16일 “우리는 심각한 통화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강달러와 엔화·위안화 약세는 미국에 매우 불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엔저를 무기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일본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삼성선물 리서치센터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 우선주의인 트럼프 후보는 달러가 약해지길 바라는데, 그가 재선되고 과거 플라자합의 같은 국가 간 논의가 진행된다면, 달러의 주요 상대 통화인 엔화는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상승 반전할 수 있다”고 점쳤다.
일본 현지에서도 엔화 가치가 반환점을 돌았다는 의견이 흘러나온다. 후쿠토메 아키히로 전국은행협회장은 18일 “엔저 흐름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고금리·고물가로 미국에서 소비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트럼프 후보의 강달러 비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고노 타로 디지털장관은 17일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필요성(엔화 강세로 이어짐)을 언급했다.
일본 정부의 개입도 엔화 흐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고 약 5조엔(약 44조원)을 외환시장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성의 국제부문 수장인 간다 마사토 재무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엔저는 투기 세력에 의한 것”이라며 “개입 횟수나 빈도 등에 제한 없이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선물 리서치센터는 “현재 글로벌 외환시장에선 엔화 약세 베팅이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이라며 “일본 외환 당국이 계속 달러를 팔면 엔화는 강해지겠지만 대부분 국채로 갖고 있으므로 (달러 매도가)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