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웹트레이딩시스템(WTS)을 준비하다가 금융감독원에 제동이 걸렸다. 네이버는 네이버페이 증권 페이지에서 클릭 한 번으로 국내 증권사의 WTS로 연결되는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WTS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증권사 스마트폰 앱인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다운로드받지 않아도 웹에서 바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네이버는 금융당국에 투자중개업 인가를 신청해 허가를 받는 과정 없이 위탁업무 신고만 하고 WTS 서비스를 출범시키려 했다. 그러나 규제 우회 의혹이 일면서 금감원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에 네이버는 금감원과도 조율하느라 WTS 연동 시스템의 구조를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시에 있는 네이버 본사 전경.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의 WTS 연동 시스템의 구조를 두고 회사와 협의 중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이 구조를 어떻게 짜는지에 따라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투자중개업’이 될지, 신고만 하면 되는 ‘업무 위탁’이 될지가 결정된다. 당초 네이버는 지난해 말 WTS 서비스를 출시하려고 했으나 반년이 훌쩍 지나서도 개시하지 못하고 있다.

WTS 연동 시스템이란 네이버 증권 페이지에서 증권사의 WTS 화면으로 이동해 주식을 거래하는 서비스다. 현재 미래에셋증권과 신한투자증권 두 곳이 네이버파이낸셜과 WTS 협업을 확정했다. 네이버 증권 페이지에서 이용자가 미래에셋증권이나 신한투자증권 WTS로 바로 이동해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게 서비스의 밑그림이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포털인 만큼 네이버 사용자를 증권사와 연결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새로운 먹거리가 생긴다. 증권사는 기존 MTS, HTS 외에도 네이버 사용자를 잠재적인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실제로 서비스가 시작되면 네이버 측은 참여 증권사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금감원은 국내 최대 포털로서 네이버의 영향력과 이용자 수를 고려해 네이버파이낸셜의 WTS 서비스 구조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당국 인가보다는 신고 방식이 훨씬 간편하기 때문에 WTS 서비스가 중개가 아닌 업무 위탁이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중개업을 인가받으려면 최소 자기자본금액 30억원을 갖춰야 한다. 이 정도는 네이버파이낸셜에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그 외 요건이 까다롭다. 투자자 보호가 가능한 인력과 전산 설비, 물적 설비를 갖춰야 하고, 대주주는 충분한 출자 능력과 건전한 재무 상태, 사회적 신용을 갖춰야 한다. 심사 요건이 많다 보니 인가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관가에선 네이버파이낸셜이 돈은 되지만 갖가지 규제를 받는 금융투자업 라이선스가 부담스러워 업무 위탁이란 주장을 펴는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네이버의 이런 행보는 카카오페이와 토스가 투자중개업 라이선스를 인가받아 각각 카카오페이증권(2020년)과 토스증권(2021년)을 차린 행보와 대비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네이버는 라이선스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 수수료만 챙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그게 전략이 될 수도 있으나 사고는 항상 ‘그레이존’에서 터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네이버파이낸셜이 최종적으로 서비스 구조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라 계속 조율 중”이라며 “일단 서비스가 시행되면 뒤로 물리기가 어려워 당국으로선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네이버파이낸셜과 같은 핀테크 업체가 업무 범위로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카카오페이는 자사 앱에서 제휴를 맺은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P2P)의 투자 상품을 소개하고, ‘투자하기’ 버튼을 누르면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카카오페이의 서비스가 단순 광고가 아니라 중개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카카오페이는 금융위원회에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상태였다. 중개업자가 아니면서 중개 서비스를 한 것이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한 셈이다. 이에 카카오페이는 금융당국의 경고를 수용하고 즉각 해당 서비스를 종료했다.

대다수 국민이 이용하는 네이버 플랫폼의 특성상 불공정거래에 더 쉽게 동원될 수 있다는 점 역시 네이버파이낸셜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이 때문에 이달 네이버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시세 조종 등에 동원돼 주가와 거래량이 이상한 종목을 탐지하는 업무에 협조하는 취지다. 네이버는 각 상장사의 주주만 참여할 수 있는 ‘주주오픈톡’의 정보를 시감위에 제공하기로 했다.

네이버파이낸셜 관계자는 “증권사들과 WTS를 연동하는 시스템은 주식 거래 중개 형태는 아니다”라며 “사용자들을 증권사의 WTS로 연결해 주고 간편 로그인을 지원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