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가 나오자, 금융감독원이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두산처럼 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동원해 구조를 개편할 경우 금융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금감원이 두산의 증권신고서엔 중요사항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았다며 퇴짜를 놓으면서다.

금융감독원 여의도 본원 /뉴스1

24일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공시한 합병과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장에서 나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며 “중요사항이 불분명하게 기재된 부분이 있어 정정신고서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는 경우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금감원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회사에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 회사가 투자자의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의 경우 신규 상장보단 정정 요청이 드물다. 상장은 국내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 진행하는 사안이지만, 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은 이미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투자자들이 아는 기업 간 이뤄지는 일이라서다. 상장이 투자 위험도가 높아 정정 요청이 잦은 걸 고려할 때 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에 대한 정정 요청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은 다음과 같다. 먼저 두산에너빌리티의 투자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한다. 이 사업부문에 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붙인다. 이후 이 사업부문을 로보틱스와 합병하고, 로보틱스와 밥캣의 주식을 교환한다. 이에 따라 밥캣의 주주는 두산에 주식을 반납하고 로보틱스의 주식을 받아가야 한다. 밥캣은 상장폐지된다. 결국 합병과 교환을 동원해 밥캣을 에너빌리티에서 로보틱스로 넘기는 안이다.

두산으로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알짜 자회사인 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13.8%에서 42%까지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주주는 이번 구조개편으로 인한 이익은 딱히 없다. 에너빌리티 주주는 매해 1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자회사인 밥캣을 잃고, 밥캣 주주는 더 이상 밥캣에 투자할 수 없어서다. 개인 투자자들은 밥캣 주식 대신 대신 받는 로보틱스의 주식의 양이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밥캣은 지난해 1조원의 흑자를 냈는데, 로보틱스는 191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교환 비율은 밥캣 1주당 로보틱스 0.63주다. 흑자 회사인 밥캣 1주를 줘도 로보틱스 1채를 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상장사라 해당 교환 비율은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두산의 선택이 불법은 아니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금감원의 정정 명령에 따라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증권신고서는 효력이 상실됐다. 두산로보틱스가 정정 요구를 받고 3개월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증권신고서는 철회된 것으로 간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