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업체 큐텐(Qoo10)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사모펀드(PEF) 업계도 손실 위기에 처했다. 다수의 운용사가 큐텐의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가 큐익스프레스 실적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핵심 거래처인 만큼, 큐익스프레스의 기업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큐텐이 올해 초 11번가 인수전에 나선 적이 있는데, 이때 딜이 성사됐다면 국민연금도 대규모 손실 위험에 빠질 뻔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큐텐은 당시 11번가 지분을 보유한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지분 교환 방식의 거래 구조로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FI들이 11번가 지분을 넘기는 대신 큐텐 또는 큐익스프레스의 지분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계획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큐익스프레스는 당초 상반기 실적을 반영한 증권신고서를 올해 10월 중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큐익스프레스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려던 투자자들은 이번 정산 지연 사태로 투자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큐텐은 나스닥 상장을 위해 실적이 부진한 ‘티메파크(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를 연이어 인수하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 4위에 올랐다. 하지만 내실은 다지지 않고 외형만 커진 것이었다. 티몬·위메프의 판매자(셀러) 정산금 지급 지연 피해가 터지며 큐텐그룹은 존속이 가능할지도 불확실해졌다.
큐익스프레스에 투자한 PEF 운용사는 최소 8곳이다. 2019년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가 600억원을 투자했고, 2년 뒤 코스톤아시아가 큐익스프레스 주식을 기초로 발행한 교환사채(EB)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해 캑터스PE와 산업은행PE이 함께 조성한 블라인드펀드를 통해 큐익스프레스 전환사채(CB) 5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큐텐이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진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큐익스프레스 주주가 된 PEF 운용사도 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PE), PS얼라이언스 컨소시엄은 지난 2022년 큐익스프레스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큐익스프레스가 발행하는 신주와 FI 연합이 보유한 티몬 지분을 교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IMM인베스트먼트는 갖고 있던 위메프 지분을 큐텐 측에 매각했으나, 이 대금을 채권으로 받았다.
큐텐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정산 지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 마련은 물론, 구조적인 사업 구조 개선까지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티몬과 위메프가 보유한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 투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하다. 큐텐익스프레스 지분을 들고 있는 PE들은 큐텐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일부 투자사는 큐텐에 현황 자료를 요청하거나, 관계자들과 미팅을 잡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일단 주력하고 있다.
큐텐에 투자한 PEF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큐익스프레스의 큐텐향 매출은 30% 수준으로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큐익스프레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과 싱가포르, 미국 등에 위치한 큐텐의 자회사들을 활용해 자체적인 현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티몬과 위메프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캡티브 물량 감소 타격이 클 경우 투자사들이 힘을 합쳐 큐익스프레스를 매각하는 등의 방안도 고민 중”이라며 “아직까지 큐텐에서 투자사들에 자금 조달을 요청한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이번 사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셀러와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IB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큐텐의 무리한 ‘몸집 불리기’라고 보고 있다. 큐텐의 인수 전에도 적자 상태였던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에 인수된 후 재무 상태가 더 나빠졌다. 위메프는 지난해 영업손실은 1025억원으로 1년 사이 84% 증가했고, 티몬은 올해 감사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현재 두 회사의 합산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9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편 큐텐으로의 11번가 매각을 포기한 국민연금은 한숨 돌리게 됐다. 티몬과 위메프 지분을 큐익스프레스 지분과 맞교환한 PEF 운용사들처럼 국민연금도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1번가 FI는 나일홀딩스컨소시엄으로 국민연금과 H&Q코리아파트너스, MG새마을금고가 포함됐다. 국민연금이 단독 LP로 들어간 프로젝트 펀드가 3500억원을, H&Q의 3호 블라인드펀드가 1000억원을, MG새마을금고의 프로젝트 펀드가 500억원을 나일홀딩스에 각각 출자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11번가 인수에 3500억원을 출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