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아시아 증시 폭락에 대해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침체 우려 같은 악재에 비해 하락 폭이 너무 컸다”며 “과도한 공포가 부른 패닉셀”이라고 분석했다. 패닉셀이란 투자자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하는 것이다.
국내 5대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현재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비해 과도한 투매 반응”이라며 “미 경기 침체 우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일본 엔화의 강세 전환, 미 대선 불확실성 등 악재가 중첩되며 공포가 증폭됐다”고 진단했다.
◇과도한 공포가 부른 패닉셀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중동 확전 가능성이 부각되며 공포가 가중됐다”며 “미국과 일본, 대만 주식시장은 연초 대비 상승률이 높았지만, 한국 증시는 상승분이 거의 없었음에도 여러 우려를 선반영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경기 침체 가능성과 엔비디아 신제품 출시 지연 우려, 일본 증시 폭락 등 세 가지를 아시아 증시 폭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과 일본, 대만은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미 경기 침체 우려의 타격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종우 한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증시 급락의 가장 큰 원인은 외국인이 1조5000억원을 순매도하며 ‘엑소더스’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 기초 체력은 탄탄
리서치센터장들은 증시 폭락의 도화선이 된 미국 경기 침체 우려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센터장은 “현재 미국 산업 생산, 재고, 소비 등을 감안할 때 미국 성장률이 낮아지더라도 2분기 연속으로 마이너스(-)로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 실업률이 2년 9개월 만의 최고치로 상승하고 제조업 경기도 둔화되자 경기 침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지속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윤석모 센터장은 “현재 미국 실업률 상승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가운데 구직자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구직자와 일자리가 함께 줄어드는 경기 침체기와는 정반대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직전 12개월의 저점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아져 경기 침체에 돌입했다고 판단하는 ‘삼 법칙(Sahm Rule)’이 이번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센터장은 “미국 7월 고용이 악화된 데는 허리케인 베릴의 영향도 상당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당분간 주식시장 변동성은 커질 듯
전문가들은 패닉이 진정되기까지 당분간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모 센터장은 “전 세계 금융시장은 악재에 민감하고 호재에 둔감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이달 말 연준의 잭슨홀 미팅과 엔비디아 실적 발표까지는 변동성 확대 국면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원 센터장은 “지수가 추가로 언더슈팅(자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떨어지는 현상)할 수 있지만, 코스피 2500선은 중장기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구간”이라며 “그러나 중동 전쟁 변수가 사그라든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해외 투자된 엔화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유종우 센터장은 “코스피의 경우 2500선에서 중장기 박스권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추가 하락 시 낙폭이 큰 주식에 대한 저가 매수도 가능하다. 위기가 기회”라고 말했다.
오태동 센터장은 “최근 주식시장의 단기 급락은 일정 수준 회복되겠지만, 전 세계 주식시장은 미 대선 전까지는 낮아진 박스권, 혹은 하락 추세 진행이 불가피하다”며 “미 대선 이후 정책 모멘텀이 재확인되는 시점에 투자 복귀를 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희찬 센터장은 “경기 침체 우려가 과해 보이는 만큼 실적이 좋은 반도체, 인공지능(AI) 테마는 계속 중심에 두고 방산, 에너지·전력, 헬스케어 투자를 조금씩 늘리는 것을 추천한다”며 “주식 이외에도 한국과 미국 국채 같은 안전 자산과 리츠, 금 등으로 적절히 분산해 두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