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현국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25%로 올리자, 이틀 만에 엔 캐리 트레이드가 절반 이상(JP모건 추정) 청산됐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에요. 컴퓨터가 한 거지요.”(A자산운용사 대표)

“지난 2일 7월 미국 실업률이 4.3%로 높게 발표됐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고용시장이 얼어붙은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컴퓨터는 이렇게까지 분석하지 못하죠. 숫자만으로 ‘경기 침체가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신흥시장 자금을 대거 회수한 거죠.”(B 증권사 임원)

최근 글로벌 증시가 급등락하는 주범으로 ‘알고리즘 매매’가 꼽히고 있다. 알고리즘 매매는 미리 짜둔 규칙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동 매매를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도 빠르게 거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건만 맞으면 앞뒤 살피지 않고 동시에 많은 매도 물량을 쏟아내 시장의 출렁임을 높인다는 단점이 있다.

◇美 증시 70~80%가 알고리즘 매매

알고리즘 매매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미리 조건을 걸어 놓는다는 것은 동일하다. 예컨대 A주식 가격이 개장 후 두 시간 동안 5%가 오르면 자동 매수가 이뤄지고, 두 시간 동안 5%가 하락하면 자동 매도가 이뤄지도록 해놓는 식이다.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하면 1초 이하의 고빈도 매매도 가능하다.

알고리즘 매매의 장점은 조건만 맞으면 동시에 많은 종목과 금액을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초에 수백 건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관 투자자가 시장이 위험하다는 신호가 나오면 매도하도록 조건을 걸어 놓으면, 빠르게 ‘손절매(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손해 보고 파는 것)’하는 게 가능하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금융 전문 시장 조사기관 아이트그룹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내 거래 중 60~70% 가까이가 알고리즘 매매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에 바탕을 두고 현재 70~80%가 알고리즘 매매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현재 거래 대금을 고려하면, 전 세계 하루 외환, 파생 상품, 주식, 채권 거래 등에서 최소 3조7000억달러(약 5076조원)가 알고리즘 매매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최근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 투자가 늘어난 것도 알고리즘 매매가 증가한 이유로 꼽힌다. 패시브 투자는 펀드매니저가 직접 자료를 분석해 자금을 운용하는 것보다 지수나 종목 가격에 따라 자동 거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ETF 리서치 기관인 ETF GI에 따르면, 지난 6월 전 세계 ETF 순자산 규모는 12조8541억달러(1경7636조원)에 달한다.

◇변동성 높여...“투매가 투매를 부르기도”

그러나 기관 투자자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알고리즘 매매가 시장 변동성을 높여 전체 시장의 리스크는 더 높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앨리슨 네이선 골드만삭스 글로벌 투자 연구원은 “2010년 발생한 ‘플래시 크래쉬’(뉴욕 증시가 몇 분 만에 9% 급락) 이후 시장은 단 하나의 패턴에 익숙해졌다. 변동성이 커지면 유동성(돈)이 증발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비해 가격이 과도하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최근 미 증시에서 엔비디아·테슬라처럼 시가총액이 큰 주식의 등락 폭이 커진 것도 알고리즘 매매가 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보통 시가총액이 큰 주식은 주가 등락이 크지 않지만, 최근 특별한 이유 없이 하루에 8%씩 하락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미국 주식 담당자는 “요즘 엔비디아 같은 주식들이 반도체 ETF 등과 연결돼 알고리즘 매매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격에 민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알고리즘 매매는 주로 기관 투자자가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 비율이 60%가 넘는 국내 시장에선 찾아 보기 어렵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글로벌 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해외 알고리즘 매매의 영향권에선 벗어날 수는 없다.

20년 경력의 펀드매니저 D씨는 “예전에는 갑자기 주가가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전화도 해보고 회의도 하면서 대응했는데, 지금은 대응할 겨를도 없이 외국인 물량이 쏟아진다”며 “지난 5일 지수가 5% 하락해 사이드카(거래 정지)가 발동됐음에도 3시간 만에 추가로 하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한 것은 알고리즘으로 인해 투매가 투매를 부른 상황이다. 그 정도로 급락할 시장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알고리즘 매매

알고리즘 매매란 미리 짜둔 규칙에 따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동 매매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주가가 기준선 이하로 떨어지거나 지수 변동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질 때 자동 매매를 하는 것이다. 미리 정해둔 조건만 맞으면 주식, 채권 매매 주문을 쏟아내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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