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도요타자동차가 발표한 2023 사업연도 실적은 역대급이었다. 영업이익이 5조3529억엔(약 49조6353억원)을 기록해, 일본 기업으로선 사상 첫 5조엔 벽을 뚫었다. 신차 판매가 늘어난 것이 호실적 배경이지만, 엔화 약세로 인한 환율 효과도 톡톡히 봤다. 약 6850억엔(약 6조3511억원)이 달러와 유로 등 환율 변동으로 인한 이익금이었다.

엔저 효과로 1년에만 6조원대 수익을 거뒀다니, 수출기업 입장에서 환율이 얼마나 큰 변수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7월 말 홈페이지에 게시된 도요타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도요타(렉서스 포함)는 작년에 전세계에 1030만대의 차를 팔았다. 이 중 일본 현지에서 팔린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무려 863만대의 차가 전부 해외에서 판매됐다. 도요타는 올 상반기(1~6월)에도 미국 등 해외에서 421만대를 팔았다. 국내 판매는 68만대에 그쳤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가 일본 기업 최초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5조엔을 돌파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해외 판매 비중이 높은 도요타는 환율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도요타는 올해 북미 지역 재고를 대폭 늘리고 있는데, 엔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도요타는 엔·달러 환율이 1엔(9원) 강세가 될 때마다 연간 500억엔(약 4641억원) 규모의 이익이 줄어든다. 비단 도요타뿐만이 아니다. 환율 방향이 엔저에서 엔고로 바뀌면,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전기, 무라타제작소, TDK 같은 일본 주요 수출기업들은 전부 역풍을 맞게 된다.

✅엔고 꺾이자 日 닛케이평균 급등

도요타 등 일본 주요 상장사들이 예상하는 올해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45~146엔 정도다. 그런데 올해 엔화 가치는 이례적인 약세를 보이면서 지난 달엔 37년 만에 최저치(161엔)를 기록했다. 도요타처럼 환율이 실적을 결정하는 수출 기업들은 남몰래 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일 글로벌 증시 대폭락이 벌어졌던 ‘검은 월요일’에 엔화 가치는 장중 141엔대까지 상승했다. 일본은행의 조기 금리 인상에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가 겹쳐지면서 ‘안전자산’인 엔화로 수요가 몰렸다.

만약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41엔대에서 유지되거나 혹은 더 높아졌다면, 일본 수출 기업들의 올해 실적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 중앙은행이 당분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 환율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14일 현재 엔·달러 환율은 147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요동치던 엔화가 진정되자, 13일 일본 닛케이평균도 전 거래일보다 3.45% 오른 3만6232.51에 마감했다. 지난 2일 ‘검은 금요일’ 당시 주가(3만5909)는 가볍게 회복했다. 닛케이신문은 이날 증시 강세 배경에 대해 “엔화 강세 흐름이 다소 꺾이면서 (수출 기업이 많은) 일본 증시에 순풍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올해 일본 증시는 엔·달러 환율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韓 현대차그룹도 환율 변수 커

그렇다면 한국 대표 수출기업 중 하나인 현대차·기아는 어떨까. 올 상반기(1~6월) 현대차그룹은 세계 시장에서 361만대를 팔았다. 작년 같은 기간(366만대)에 비해 살짝 감소했다. 하지만 실적은 오히려 액셀을 더 강하게 밟고 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에도 쾌속 질주하고 있다.

올해 2분기(4~6월) 기준 현대차 영업이익은 4조2791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아 역시 3조643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분기 기준 최대치를 찍었다.

증권가에서는 호실적 배경에 예상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는 원·달러 환율의 효과가 크다고 분석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되는 현대차·기아 차량의 63~64%가 해외로 수출된다.

작년 말 현대차그룹은 2024년 사업 계획을 세우면서 원·달러 예상 환율로 1270원을 설정했다. 미국 기준 금리 인하가 예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 인하 결정을 뒤로 미루면서 올해 원·달러 환율은 1350원을 훌쩍 넘어 거래되고 있다. 심지어 연초에는 1400원선을 터치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환율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현대차 영업이익이 2000억원씩 늘어난다고 추정한다. 해외 수출 비중이 현대차보다 더 큰 기아는 10원에 영업이익이 3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