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1년 영업이익 5조엔 첫 돌파 vs 서민식당 라멘집 파산 역대 최대.
극심한 엔저(円低)가 일본 사회에 가져온 양극단 모습이다. 도요타자동차 같은 수출기업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실적이 급증한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도요타는 엔화가 1엔(9원) 약세가 될 때마다 이익이 500억엔(약 4641억원)씩 커진다.
반면 서민들이 애용하는 라멘집은 엔저로 인한 전기·가스요금·인건비·원자잿값 상승 직격탄을 맞아 폐업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올 1~7월에만 1000만엔(약 9200만원) 이상 부채를 떠안고 파산한 라멘집이 49곳에 달했다. 전년 같은 기간(29곳)에 비해 크게 늘었고,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지난 2020년 코로나 당시의 역대 최고치(54곳)도 넘어설 전망이다.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듯, 일본의 경제 지표는 성장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15일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8%였다. 작년 3분기 1% 감소에서 4분기에 0.1% 증가를 기록했던 GDP는 올 1분기 0.6% 감소로 악화됐다가 다시 플러스로 돌아섰다.
고물가·고환율 상황에선 민간 소비가 크게 개선되기 힘들다. 지난 달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38년 만의 최고인 161엔대까지 상승했는데, 1986년 12월(162엔) 이후 처음이었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에 따르면, 엔저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임금이 하락한 데다 각종 세금 부담마저 커지면서 민간 소비는 좀처럼 탄력이 붙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 달 일본은행의 깜짝 금리 인상 이후, 엔·달러 환율 방향이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일엔 엔화 가치가 단숨에 141엔대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엔테크 목적에서 엔화 예금에 11조원 가까이 모아둔 한국 투자자들은 언제쯤 짭짤한 수익을 챙길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엔화는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1$=160엔 수퍼 엔저 전환점 왔다”
15일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47엔대에서 거래됐다. 전문가들은 ‘1달러=160엔대’의 초엔저 국면이 당장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나타난 수퍼 엔저가 투기 세력의 엔저 베팅 영향이 컸는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후루사와미츠히로(古沢満宏) 미쓰비시스미토모 국제금융연구소 이사장(전 재무성 재무관)은 닛케이신문 인터뷰에서 “160엔을 넘어서는 수퍼 엔저의 배경엔 투기 세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연말까지 엔·달러 환율은 145엔 수준에서 움직일 전망인데, 과거(110~130엔)와 비교하면 엔저이기 때문에 수출기업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카와히데오(早川英男) 도쿄재단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일본 무역수지는 늘 적자이고 서비스 수지도 해외 IT기업에 지출하는 비용이 많아 적자고 개인들의 해외 투자도 늘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엔화 강세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연말 환율은 140엔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티그룹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네이선 시츠씨(전 미 재무부 차관)는 “경기 둔화 우려에 미 연준이 9월, 11월에 0.5%포인트, 12월엔 0.25%포인트 금리를 내릴 것”이라며 “미일 금리차가 축소되면 엔·달러 환율은 역사적 평균 수준인 120엔대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IB 전망치 평균 153엔대
엔·달러 환율을 둘러싼 투자은행들의 눈높이도 다소 낮아졌다. 1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IB) 12곳이 제시한 3개월 후 엔·달러 환율 평균 전망치(9일 기준)는 153.89엔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말 전망치(155.56엔)보다 1.67엔 하락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가 163엔에서 150엔으로, HSBC가 154엔에서 150엔, JP모건이 157엔에서 147엔으로, 노무라가 150엔에서 143엔으로 각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다만 바클레이즈와 BNP파리바는 160엔, 씨티와 스탠다드차타드는 158엔, 웰스파고는 157엔 등 3개월 후 환율 전망치를 종전 그대로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