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인 A씨는 가업 승계 고민에 빠졌다. 외아들은 성악가인데, 가업을 물려주고 싶었지만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외아들의 ‘후계자 만들기’를 준비한 것은 B증권의 패밀리오피스였다. 경영 수업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애널리스트가 1대1로 붙어서 금융과 시사 등을 가르쳤다.
최근 회사를 매각하고 수천억 원대 자산가가 된 40대 C씨는 고민에 빠졌다. 회사 매각 대금으로 안정적 수익을 내면서, 새 사업도 시도하고 싶었다. 고민 해결에 들어간 것은 D증권사의 패밀리오피스였다. C씨의 자산으로 원하는 수익만큼 포트폴리오를 짰을 뿐만 아니라 세미나 등을 통해 새 사업을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C씨는 “다른 기업들의 프라이빗 IR(투자 설명회)도 들으며 벤처 투자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증권가, ‘부자 중의 부자’ 모시기 경쟁
최근 증권가에선 ‘부자 중의 부자’로 불리는 패밀리오피스 고객을 잡기 위한 열기가 뜨겁다. 패밀리오피스란, 부자 고객 자산 관리를 하는 PB(프라이빗 뱅커) 개념이 확장된 것으로 거액의 금융 자산을 가진 고객들에게 법무·세금·승계까지 종합 자산 관리를 하는 것이다. 패밀리오피스 개념은 19세기 유럽의 거부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집사에게 체계적으로 자산을 관리하도록 한 것에서 시작했다. 몇 대를 이은 부자들이 많은 해외에선 흔한 개념이다.
2020년 가장 먼저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시작한 삼성증권의 가입 기준은 1000억원 이상에 달하지만, 최근 대상이 100가구를 넘었다.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등도 모회사인 금융지주와 연계해 패밀리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한국투자증권도 2년 전부터 패밀리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는 크게 자산 관리, 가업 성장, 가업 승계 등이다.
자산 관리는 골드만삭스, 칼라일 등 글로벌 운용사의 사모대체펀드를 투자하거나 국내의 우량 비상장 프로젝트 딜(거래)에도 들어가기도 한다. 지난해 삼성증권은 KT클라우드, SK팜테코 등 비상장사의 투자에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을 참여시키기도 했다. 정연규 삼성증권 상무는 “이 정도 자산이면 기관 투자자급이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과 투자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가 다른 거액 자산가에 대한 서비스와 다른 건 가업의 ‘성장’과 ‘승계’ 관련 문제도 자문한다는 것이다. 고객 기업의 성장을 위해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계약 등을 자문한다. 투자 설명회는 명품 브랜드에서 VIP 고객만 상대로 패션쇼를 여는 것처럼 소규모로 진행하기도 한다. 승계는 세금부터 후계자 교육까지 종합 관리를 해준다.
◇젊은 부자 늘어나 “네트워킹 필요”
최근 증권사들의 패밀리오피스 사업이 커지는 것은 젊은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는 2023년 45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7.5%(3만2000명) 늘었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 지분을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지분을 담보로 보다 공격적인 투자나 사업을 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NH투자증권이 30억원 이상 자산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주식이 44%로 가장 많았다.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은 약 20%, 금, 현물 등은 1%도 되지 않았다.
신흥 부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네트워킹’이다. 그러다 보니 강연 모임을 열기도 한다. 삼성증권은 지난 6월 패밀리오피스 고객들을 대상으로 로보틱스 분야의 석학인 김상배 MIT 교수를 모셔 ‘AI와 로봇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과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패밀리오피스 시장이 커지면서 미국·홍콩 등의 패밀리오피스들이 국내 진출을 위해 사무소와 지사를 차리고 인력 충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란
‘부자 중의 부자’라 불리는 초고액 자산가와 가족, 가문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금융 자산, 부동산, 세무, 상속·증여 등 금융 서비스뿐만 아니라 후계자의 유학이나 결혼 같은 1대1 라이프 스타일 맞춤형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19세기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집사에게 체계적으로 자산을 관리하도록 한 것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