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4만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의 은퇴 쓰나미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국정 브리핑에서 국민연금에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안정장치란, 출산율이나 기대수명 같은 주요 변수에 따라 보험료율, 연금액, 소득대체율 등을 국가가 자동으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연금 역사가 긴 선진국은 대부분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으로 호주, 캐나다, 핀란드, 독일,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0%가 공적연금에 자동안정장치 제도를 도입했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4일 발표 예정인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에 자동안정장치 도입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1000만명에 육박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올해부터 법정 은퇴연령(60세)에 진입하면서 연금 지출 속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베이비부머는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인 705만명보다 인구가 많아 단일 세대 중 가장 큰 규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지급할 연금액은 50조원에 육박한다. 2021년 30조원을 돌파했던 연금액은 매년 평균 4조8000억원씩 늘어나 올해 44조원을 넘었고, 내년에는 49조3485억원이 지급될 전망이다. 만약 정부가 제시한 연금 자동안정장치가 제도화되면, 연금은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
✅日, 2년 연속 공적연금 삭감
우리가 연금 제도를 배워 온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엿볼 수 있다. 일본은 벌써 20년 전에 자동안정장치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현역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 2004년 자동안정장치(매크로 경제 슬라이드) 도입 등을 담은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경제 상황이 나쁘면 자동안정장치가 발동되고 이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지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 발동된 건 2021~2022년이었다. 코로나 위기로 연금을 내야 하는 젊은 세대의 소득이 감소했던 시기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자동안정장치를 발동해 2년 연속(2021년 0.1%, 2022년 0.4% 감액) 은퇴자들의 연금을 깎았다.
“물가가 이렇게 오르는데 연금도 당연히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고물가 시기에 연금액이 2년 연속 줄어들다니 정부를 믿을 수가 없네요.”(80대 여성)
“노인들 힘든 건 이해하지만, 내 노후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도 모를 돈을 매달 쥐꼬리 월급에서 떼이는 우리 입장도 고려해 달라.”(30대 남성)
연금 감액이 2년 연속 진행되자, 일본에선 격렬한 세대(世代) 갈등이 벌어졌다.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 노인과 손자가 연금 혜택과 부담을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인 것이다. 연금에 의지해 노후를 보내는 4000만 일본 노인들은 연금 감액에 분개했다. 반면 연금을 내야 하는 젊은층은 ‘연금 제도가 붕괴될까봐 불안하다’고 맞섰다.
✅은퇴자들, 연금 감액 소송 냈지만 패소
연금 수급자들의 불만은 결국 크고 작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전국 39개 지역에서 연금 감액 관련 위헌 소송이 제기됐는데, 작년 말 첫 판결이 나왔다. 일본 최고 사법기관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헌법재판소)는 효고현(兵庫県) 수급자 95명이 국가를 대상으로 낸 소송에서 ‘연금 감액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최고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연금 제도는 세대간 공평을 꾀해야 하며, 연금 감액은 재정 기반의 악화를 막고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하지 않다”면서 “최저한의 생활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韓 국민연금, 물가 반영해 계속 올라
한국 국민연금은 물가를 반영해 계속 오르는데, 최근 3년 동안 11.2% 올랐다. 올해 연금액은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반영되면서 3.6% 올랐다. 649만명이 대상인데,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면 매달 추가로 3만6000원씩 더 받는다.
‘물가 반영’은 정부가 앞장서서 홍보할 정도로 국민연금이 갖는 최대 장점이다. ‘물가가 오르면, 내 연금액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으면 연금의 실질 가치는 하락하니까 ‘물가 반영’은 수급자에게는 굉장히 유리한 장치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기초연금, 군인연금도 같은 방식이다. 민간 금융회사가 파는 사적연금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하지만 연금액 증가는 결국 현역 세대의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최소화하고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은 자동안정장치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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