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나올 만큼, 과열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 집값은 ‘내일은 더 싸다’는 디플레이션을 연상시키며 연일 추락하고 있다.
8월 중순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70개 주요 도시의 신축주택 가격 추이만 봐도 그렇다. 전월 대비 가격이 하락한 곳이 전체의 94%(66개)에 달했다. 주요 도시 절반은 14개월 연속 집값이 내리고 있다. 지난 6월엔 중국 미분양 아파트가 한국 인구 수보다 많은 6000만채라는 블룸버그 분석도 나왔다.
중국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되자, 국제통화기금(IMF)도 나섰다. IMF는 지난달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가 1조 달러(약 137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동산 산업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할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경제 중심축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 내수와 소비는 둔화될 수밖에 없다.
과연 중국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근 일본에서 <중국부동산버블>이란 책(한국 미출간)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는 가류(柯隆) 도쿄재단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에게 실상을 들어 봤다.
중국에서 태어난 가류 수석연구원은 지난 1988년 일본으로 이주해 30년 넘게 생활했다. 나고야대(名古屋大) 대학원 수료 후 장은(長銀)종합연구소, 후지쯔(富士通)연구소 등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대장성(현 재무성) 외환심의회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현재는 도쿄재단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中 올해 경제성장률 5% 밑돌 것”
–중국 부동산 버블은 어느 정도였나.
“한 나라의 집값이 적정한지 알아볼 때 쓰는 지표로 PIR(Price income Ratio)이라는 게 있다.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을 뜻하는데, PIR이 높으면 집값이 비싸서 부담이 된다는 의미다. PIR은 6배 정도가 적당한데, 중국은 버블이 한창이었을 때 주요 도시의 PIR이 50배를 넘었다. 1년에 버는 돈을 50년 동안 꼬박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터지기 직전인 1990년에 도쿄의 PIR이 18배였다.”
–버블이 터졌다지만 폭락한 것 같진 않다.
“전국 평균치라서 그렇게 보일 수 있고, 더 큰 이유는 정부가 공식 통계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표상 폭락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도 희망자가 헐값에 팔고 싶어도 (정부가 정한) 가격 밑으로는 거래하기 어렵다.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파산한 곳들이 많고, 완커 같은 국영 부동산 업체마저도 올 상반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부동산 버블이 생긴 주된 이유는?
“정책 실패가 원인이었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개발을 세수 확보 대책으로 활용했다. 채권 발행이 어려운 지방정부가 토지사용권을 민간에 팔아 수익을 올려 재원으로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땅값이 비쌀수록 지방정부 수입이 커지는 구조였고, 땅값 상승에 집값이 연동되면서 부동산 열기가 뜨거워졌다.”
–구조적으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겠다.
“세금 제도가 제때 정비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중국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부동산 보유세 같은 제도가 없었다.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어도 (일본이나 한국처럼)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부담이 없다 보니 투기가 성행하게 됐다.”
✅지방정부 부채 2경원, 경제 뇌관
–지방정부 부채 위기도 부동산 불황 때문인가.
“중국 지방정부와 부동산 개발업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지방 정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직접 부동산 시행·시공을 진행하거나 별도의 ‘인프라 투자회사’를 설립해 진행했다. 그 결과 지방정부와 인프라 투자회사의 채무는 매년 늘어나 작년 말 기준 100조위안(1경8887조원)에 달했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겨진 부채도 많기 때문에 규모는 예상보다 더 클 것이다.”
–왜 지방정부가 부동산 개발에 앞장선 건가.
“중국은 연금을 지방 정부가 각자 책임지는 구조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연금 제도를 지탱할 재원이 필요했다. 만약 노후에 받을 연금이 감액될 것 같다면, 인민들의 불만이 커지지 않겠나. 토지사용권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존재였다. 팔기만 하면 바로 수익으로 잡히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수익금 일부는 연금에 투입됐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로 토지사용권 판매가 급감했고, 과도한 빚을 짊어진 지방정부는 이자 상환도 힘들어 허덕이게 됐다.”
–버블 붕괴엔 제로금리가 효과적이지 않나.
“그렇다. 부동산 불황뿐만 아니라, 실업자도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더 과감히 금리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태는 ‘투 레이트 투 스몰(너무 늦고 너무 작고)’이다. 금리를 찔끔찔끔 내리긴 하지만, 여전히 절대금리 수준은 3%대여서 물가에 비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왜 인민은행은 금리 인하에 신중한가.
“중국 은행들의 수익 구조는 예대마진 의존형이다(미국 은행은 수수료 위주). 금리를 내리면 은행 수익성이 나빠진다. 은행들이 예대마진으로 돈을 벌어야 그 일부를 부실채권(NPL) 처리에 충당할 수 있는데, 예대마진이 줄면 불량 채권 처리가 정체될 우려가 있다. 그러면 은행은 도산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정부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중국 예금자들은 은행의 부실채권 처리 비용을 나도 모르게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제로코로나로 중소기업 400만곳 도산
–중국 정부는 5% 성장을 자신하는데...
“만약 중국 경제가 평온해 보인다면, 중국 정부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공식 통계로는 5% 내외의 성장률이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성장률일 것이다. 만약 5% 안팎의 성장을 이뤘다면 고용이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테니까.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통계 방식을 유리하게 바꿨는데도 7월에 17.1%로 최고치였다. 이대로는 5% 성장을 실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공식 통계로는 5% 내외 성장을 실현했다고 발표될 수도 있다.”
–현재 청년 실업은 얼마나 심각한가.
“지금 중국 정부의 최대 고민은 고용 악화, 특히 청년 실업률 상승이다. 고용이 악화된 근본 원인은 3년 동안 이어진 제로코로나 정책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약 400만개의 중소 영세 기업이 도산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겪은 중소 영세 기업을 구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은 대거 중국을 떠나고 있다. 대졸자는 매년 1000만명씩 쏟아지는데 이대로 젊은층 실업이 장기화되면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중국에 닥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중국이 부동산 위주 경제 성장에 집착한 이유는?
“중국은 탑다운 방식의 혁신엔 재주가 있다. 가령 지난 6월 중국의 무인 탐사선이 달 뒷면에 착륙했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혁신에선 성과가 나온다. 하지만 민간 위주의 혁신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시장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산업 구조, 즉 고부가가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을 활성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정부 주도 육성책에선 이런 산업은 주목 받지 못한다. 특히 시진핑 정권은 국유 기업을 우대해서 경쟁력 높은 기업들이 생겨나기 어렵다. 그래서 부동산에 기대어 경제 성장을 꾀한 것인데, 지속 불가능했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도 부동산 불황 때문인가.
“중국 기업들은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외부로 눈 돌리고 있다. 중국의 과잉 설비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과잉 설비가 생겨난 것은 정부의 시장 관여, 즉, 국유 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생긴 것이다. 특히 철강이나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에서 과잉 생산이 두드러진다. 재고가 많아지면 기업들이 망하기 때문에 덤핑 수출을 할 수밖에 없다(이른바 디플레이션 수출). 미국과 유럽에 이어 곧 신흥국에서도 제재 가능성이 나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국의 제조업도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 경기 침체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중국에선 지금 부유층 해외 이주가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과 유럽의 일부 국가다. 한국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아마 한국과 연결된 중국 동북지방, 산둥성 근처가 중심일 것이다. 중국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일중경제협회(日中経済協会)에서 강연할 일이 있었는데, 일본 기업인들의 우려도 상당하다. 대중(対中) 의존도를 점차 낮춰 나갈 필요가 있고,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면 대중 전략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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