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공모가 뻥튀기 현상을 막기 위해 제도를 개선 중인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이 정부 기조에 어긋나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한국투자증권이 상장을 주관하는 기업에 대해선 개인 투자자들이 공모주를 청약할 때 그룹 계열사인 저축은행의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게 서비스의 골자다. 업계에서는 청약 과열이 심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한국투자저축은행 공모주 청약 자금 제휴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 투자자가 한국투자증권이 IPO 주관사로 들어간 예비 상장기업의 공모주를 청약할 때 한국투자저축은행에서 자금을 대출받는 구조다. 한국투자증권이 주관사가 아닌 종목은 대상이 아니다. 상장되는 주식 수의 절반 정도는 비례 배정, 즉 넣은 증거금 규모에 비례해 공모주가 배정되는 터라 IPO 대출은 투자자에게 총알을 지원하는 효과를 낸다.
대출 한도는 8억원으로, 대출 신청 최소 금액은 100만원이다. 금리는 5.5~6.5%로, 정확한 금리는 투자자의 신용도에 따라 달라진다. 대출 기간은 실행일로부터 10일이며 대출금은 저축은행 심사 후 한국투자증권의 계좌로 입금된다. 공모주 배정이 끝난 후 증거금을 돌려주는 환불일에 대출금은 한국투자저축은행으로 자동 상환된다. 차주는 대출금을 받을 때 신청한 청약 종목의 청약 자금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
과거 타 금융사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었다. 2020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가 상장할 때 케이뱅크는 자사와 NH투자증권(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IPO 주관사)의 연계 계좌를 개설할 경우 최대 4500만원의 대출을 내줬다. 다만 이는 일회성이었다.
이 서비스는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기도 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주관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IPO 시장의 신뢰성이 훼손됐다고 판단하고 제도를 개선 중이다. 주관사가 추후에 있을 발행사의 채권 발행, 계열사 상장 업무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을 하는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IPO 시장에 대한 신뢰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데 일조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에 신설된 금감원의 ‘IPO 주관 업무 혁신 작업반’은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공동 주관한 반도체 설비기업 파두 사태로 촉발됐다.
그해 상장한 파두는 상장 첫해 1203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상장 직후인 2분기 매출액은 5900만원에 그쳤다. 3분기 매출도 3억2100만원에 그쳤다. 파두가 몸값을 부풀려 상장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관사였던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금감원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저축은행보다 고객군이 넓은 데다 투자자들에게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는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을 계열사로 둔 증권사들은 한국투자증권의 서비스 출시와 관련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NH투자증권 모두 IPO 대출 서비스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지조차 몰랐다”며 “한국투자증권이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거쳤겠지만 금융당국이 지적할 여지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서비스가 규제를 우회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행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 제8조상 IPO 주관사는 공모주식 청약자에게 청약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줄 수 없다. 이 규정은 2007년에 만들어졌는데, 무리한 대출로 ‘묻지 마’ 청약에 나서는 투자자들이 늘어나자 금감원이 당시에도 IPO의 관행을 개선하겠다며 해당 제도를 신설했다. 규정상 대출을 할 수 없는 건 IPO 주관사라 한국투자증권이 IPO 대출 서비스에 한국투자저축은행을 중간에 끼운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관련 서비스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대출 총량 규제를 감안하면 당사의 공모주 청약 대출은 청약 수요나 자금이 증가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며 “기존 공모주 투자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다양한 자금 조달 선택지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