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을 공개매수하고 있는 가운데, 고려아연 주가가 연일 오르면서 공개매수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19일에는 최윤범 회장이 영풍 및 장씨 일가와의 특별관계를 해소하며 대항 공개매수 가능성이 생기자 장중 7% 넘게 급등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이 공개매수 단가를 높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지만, MBK는 “의미 있는 등락 폭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다. 대부분 개인 간 거래이며 거래량이 적어 주가 변동성이 클 뿐,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어떤 반격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기존 주주인 현대차·한화·LG화학이 주식을 주가로 매입해 최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시나리오, 최 회장이 또 다른 사모펀드와 손잡고 대항 공개매수를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 MBK “현 주가 무의미… 현대차 등 최 회장 백기사 아냐”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고려아연은 전 거래일 대비 4만1000원(6.16%) 오른 70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MBK와 영풍 측이 제시한 공개매수 단가 66만원보다 7.1% 높은 가격이다.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3일에도 19.78% 급등하며 66만6000원으로 마감했다. 추석 연휴 전에 이미 공개매수가를 넘어선 만큼, 이날 주가 향방에 관심이 쏠린 바 있다.
이에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주식 거래량이 약 49만주에 불과하며 개인 간 거래 비중이 높다 보니 주가 변동성이 큰 것”이라며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가 활발해져야 실제로 의미 있는 가격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인은 고려아연 주식 33만주를 매도하고 32만주를 매수했다. 국내 기관은 6만7000주를 매도하고 8만6000주를 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의 성공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김광일 부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고려아연은 기관 투자자들의 지분이 절대적으로 많고, 평균 매수 단가가 45만원에 못 미친다”며 “우리가 제시한 공개매수가 66만원은 45만원에 51.4% 정도의 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인 만큼, 이미 매력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개매수 대상은 고려아연 보통주 144만5036~302만4881주(6.98~14.61%)다. MBK파트너스가 144만259~301만4881주(6.96~14.56%)를, 영풍이 4777~1만주(0.02~0.05%)를 취득하는 게 목표다. 6.9%는 MBK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지분율 과반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물량이다.
MBK파트너스는 최 회장 측 ‘백기사’로 간주돼 온 현대차 등의 보유 지분도 최 회장의 우호 지분이라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2년 최 회장은 고려아연 자사주를 LG화학·한화와 맞교환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HMG글로벌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현재 한화그룹이 7.8%를, HMG가 5%, LG화학이 1.9%를 보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최 회장 및 우호 주주들의 지분율을 33.2%로 추산해 왔다.
김 부회장은 “이들 기업이 최 회장의 백기사라면 5% 이상 주요 주주 보고서를 내고 공시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최 회장 개인의 우호 주주가 아닌 고려아연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 최 회장, 영풍·장씨 일가와 특수관계 해소
이날 고려아연 주가가 7% 넘게 급등한 이유는 최 회장 측 입장 표명과 관계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그동안 침묵을 지켰지만, 이날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온 힘을 다해 MBK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고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며칠간 밤낮으로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계획을 짜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의 이 같은 메시지를 대항 공개매수 등 지분 추가 매입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날 고려아연은 공시를 내고 최 회장과 영풍 및 장씨 일가의 특수관계가 해소됐다고 밝혔는데, 이로써 최 회장의 대항 공개매수가 법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40조는 “공개매수자 및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공고일부터 종료일까지 공개매수에 의하지 않고는 그 주식을 매수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별도 매수 금지 의무’라고 한다. 특별관계자는 별도의 공개매수는 물론이고 다른 방법을 통한 매수도 할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주식의 공동 보유 관계가 해소됐다는 걸 증명하면 대항 공개매수나 추가 지분 매집이 가능해진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성훈 KL파트너스 변호사는 “고려아연 밑에 있는 계열사들은 (영풍 및 장씨 일가의) 특별관계자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지만, 최 회장 개인은 입장을 천명하면 공동 보유 관계 해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직접 자기 명의로 대항 공개매수를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 금액이 최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개인이 그 정도 자금을 조달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씨 일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계열사들이 나서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풍과 계열 분리를 하지 않는 한 특별관계를 해소할 수 없으며, 더욱이 고려아연 밑에 있는 계열사라면 고려아연 주식을 사는 게 순환출자에 해당해 공정거래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백기사, 지분 추가 매입 해줄까… 또 다른 사모펀드 등판 시나리오도
업계에서는 결국 최 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가 제3자와 손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차, 한화, LG화학, 조선내화, 한국타이어 등 기존 주주사들이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줄지가 관건이다.
김 부회장은 이를 의식한 듯 간담회에서 “이론상 대항 공개매수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SM엔터테인먼트 사태’가 있지 않았느냐”며 “사업상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제3자가 공개매수에 관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 사태란 지난해 하이브가 SM엔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을 때 카카오가 시세 조종을 통해 이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뜻한다.
제3의 법인이 대항 공개매수에 참여할 경우 배임 리스크도 발생할 수 있다. 자본시장의 특성상 공개매수 진행 중 올랐던 주가는 공개매수가 종료되면 다시 하락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공개매수에 뛰어든 법인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기존 주주사가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로 사서 최 회장 편에 서는 게 무조건 배임이 되는 건 아니다”라며 “고려아연과의 사업 관계 때문에 출자를 늘리는 경우라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말 MBK파트너스가 한국앤컴퍼니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을 때, 효성첨단소재가 조현범 회장의 백기사로 등판한 바 있다. 조현준 효성 회장과 조현범 회장이 사촌지간이기도 하지만 효성 측이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산 데는 사업상의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효성첨단소재의 타이어코드 및 보강재 매출 비중은 50~60%에 육박한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그 외에도 최 회장 측이 다른 사모펀드와 손잡고 조력을 받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도쿄로 출국, 글로벌 사모펀드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