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대폭 낮춘 보고서를 내기 직전에 하이닉스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는 의혹(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선행 매매)에 대해 한국거래소가 조사에 착수했다. 20일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SK하이닉스 기업 분석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에 나온 대규모 매도 주문 건에 대해 계좌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면서 “계좌 단위로 분석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며, 이상 거래를 발견하면 절차에 따라 금융감독원으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추석 연휴 직전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13일 SK하이닉스 매도 물량이 가장 많았던 증권사 창구는 모건스탠리 서울지점이었다. 이날 모건스탠리 서울지점은 SK하이닉스 종목 매물을 101만주 넘게 내놓았다. 당일 매도 물량 2위인 JP모간(50만주)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당일 총 매도 물량의 20% 가량을 차지했다.

모건스탠리는 추석 연휴 이틀째인 지난 15일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를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절반 이상 낮췄다. D램 메모리 수요가 줄어들고,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공급 과잉 우려가 높다는 이유였다. 투자 의견도 종전 ‘비율 확대’에서 ‘비율 축소’로 한꺼번에 두 단계나 낮췄다. 사실상 ‘주식을 팔라’는 권유에 가까웠다.

연휴 도중에 나왔던 모건스탠리의 매도(sell) 보고서는 연휴가 끝나고 첫 거래일인 19일 국내 증시에 반영됐다. 이날 SK하이닉스 주식은 개장하자마자 외국계 증권사에 난타당했다. 이날 하루에만 외국인 매도 물량이 240만주 넘게 나오는 등 매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홍콩계 사모펀드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을 공격한다는 루머까지 가세하며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기관과 개인이 방어에 나섰지만, 대량 매물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장중 한때 11%대 하락률을 보이며 14만원대까지 급락했다가 전날보다 6.1%(1만원) 떨어진 15만2800원으로 마감했다. 20일에는 미국발 반도체 훈풍에 힘입어 주가가 2.8% 올랐지만, 종가는 15만7100원으로 추석 연휴 이전의 주가(16만2800원)는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픽=김하경

✅대량 매도로 101억원 손실 피해

업계에선 단일 증권사 창구에서 하루 만에 100만주 넘는 매도 물량이 쏟아진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연휴 직전인 13일 기준 SK하이닉스 종목의 창구별 매도량을 보면 모건스탠리 101만주, JP모간 50만주, 신한투자증권 50만주, 삼성증권 35만주, 한국투자증권 34만주 순이었다. 13일 종가 기준으로 모건스탠리 창구를 통한 매도 금액은 약 1647억원이었다. 19일 주가 하락 폭(1만원)을 감안하면 101만주를 급락 전에 매도해 약 101억원의 손실을 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업계에서 선행매매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선행매매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불법 이익을 취하는 주식거래 행위를 뜻하며,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행위다.

매도 시점과 규모가 미묘하지만 증권가에선 아직 선행매매라고 단정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준법 감시 업무를 담당했던 국내 증권사 관계자는 “모건스탠리 서울 창구를 통해 매도 주문이 체결됐어도 실제 투자 주체는 모건스탠리 계좌를 보유한 다른 외국계 기관 투자자일 수 있다”고 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는 국내 금융당국 뿐 아니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를 받아 위법 시 제재가 국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규정을 위반한 매매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단일 창구에서 하루 만에 대규모 매도가 이뤄진 것이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단순히 모건스탠리 창구에서 주문이 이뤄졌다는 것만으로 선행매매를 단정할 수 없으며, 매매 주체가 누구인지 등을 면밀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시장에서 의혹을 제기하면 통상적으로 점검하게 된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